창세기 16장 7-11절
네가 임신하였은즉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이스마엘이라 하라
(창세기 16장 7-11절)여호와의 사자가 광야의 샘물 곁 곧 술 길 샘 곁에서 그를
만나 이르되 사래의 여종 하갈아 네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느냐 그가 이르되 나는 내 여주인 사래를 피하여 도망하나이다 여호와의 사자가 그에게
이르되 네 여주인에게로 돌아가서 그 수하에 복종하라 여호와의 사자가 또 그에게 이르되 내가 네 씨를 크게 번성하여 그 수가 많아 셀 수 없게 하리라
여호와의 사자가 또 그에게 이르되 네가 임신하였은즉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이스마엘이라 하라 이는 여호와께서 네 고통을 들으셨음이니라
이스마엘은
아브라함이 하갈에게서 낳은 아들로서 이삭의 이복 형이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언약을 따라 난 자가 아니었기에 아브라함의 기업을 잇지 못하고 그의 집에서 쫓겨남을
당해야만 했다. 그러나 그는 열두 아들을
두었으며 아랍 족속의 시조가 되었다.
하갈은 광야로
쫓겨나 임신한 몸으로 큰 고생을 해야 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자의 도움을 받아 다시 아브라함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해산 달에 편안하게
아이를 출산하게 되었다. 비록 하갈에게 잘못된 일들이 많이 있었지만, 하나님께서는 하갈을 불쌍히 여기시고, 은혜를 베푸사 아이를 해산하는 축복을 입게 하셨다. 이렇게 하나님은 고난당하는 자의 위로자가 되신다. 그러나 하나님이 위로자가 되실지라도, 이스마엘에게는 구원자는 되지 못한다. 그 이유는 약속의 씨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스마엘은
아브라함의 언약과는 무관하게 태어난 아들이었다. 하지만 그 역시도 아브라함의 씨였기에 하나님은 그가 누릴 수 있는 일반적인 은총을 베풀어 주셨다. 그것은 생육하고 번성하는
축복이었다. 이런 하나님의 축복으로
말미암아 이스마엘은 훗날 12방백의 조상이 되었다. 그리고 이스마엘 자손들은 앗수르에서 애굽지역에 이르는 팔레스타인 동편 땅에 두루 편만하게 되었다. 그 자손들은 오늘날
아랍과 터키에서 뿌리내렸다.
이스마엘은
들나귀와 같이 되겠다고 했다. 여기 들나귀란 거친 광야를 질주하며, 광야를 거처로 하여 광야의 거친 풀을 먹고 자라는 짐승이다. 이스마엘의 인생이 장차 어떻게 될 것인가를 예언하는 말이다. 이 예언대로 이스마엘은 16세가 되던 해, 아브라함의 집에서 쫓겨나
바란 광야로 가게 되었다. 그리고 어머니가 맺어 준 애굽 여자와 혼인하여 자녀를 낳게 된다. 그리고 이 후손들은 훗날 근동의 사막 지역을 활동 무대로 하여 문명과 담을 쌓고 원시적 생활을 하며 험한
자연 환경을 상대로 힘들고 거친 삶을 살아야 했다.
언약 밖의
삶은 영적으로도 황무하고 거칠며 고통스런 삶이다. 이스마엘은 들나귀와 같은 삶을 살게 된다고 하였다. 이는 이스마엘 후손들이 칼을 의지하고 전투적인 삶을 살게 된다는 말이다. 즉, 이웃 민족을 공격하여 약탈하고 자신들도 이웃의 공격으로 약탈당하는 그런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이스마엘이 형제들의
동방에 산다』고 했다.
이 말의 의미는
형제들과 대치 상태에서 살게 된다는 말이다. 끊임없이 형제 나라와 대치하며 전투 준비와 비상 경계 태세 속에서 이스마엘 후손이 살아가게 된다는 말이다. 실제로 이스마엘의 후손인
아랍과 터어키 부족의 역사는 전투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지금도 아랍 지역은 세계의 화약고라고 불릴 정도로 끊임없는 긴장이 연속되고 있다.
이스마엘은
하나님을 떠나 세상에 온 모든 자다. 하갈이 이스마엘을 낳고 사라를 없신여기자, 사라의 핍박이 시작되었다. 곧 하갈(율법)은 이삭(스리스도)가 오기 전까지는 여주인의 종이 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율법의 완성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도망가던 하갈을 천사가 찾아가서 사라에게로 돌아가서 여주인의 종이 계속되어야 함을 말해주고 있다.
천사는 하갈에게도
축복을 해주신다. 하나님 나라를 떠난 모든 인간들에게 하나님의 약속의 축복이 임할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이 세상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은 자기의 왕국을 세우는 일을 율법을 지켜서 해보고 그것이
될 수 없음을 깨닫고 돌아설 때 하나님께서 축복의 은혜를 베풀어주시겠다는 것이다. 율법을 지키려고 하다가
그것이 이루어질 수 없음을 깨닫고, 약속의 자녀(그리스도, 이삭)가 오실 그때에 (애굽에서 430년 후에) 은혜를 베풀겠다는 것이다.
갈라디아서 3장 25-27절『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이 성경 말씀은 3장 22절부터 연결되어 있는 문장이다. 모든 인간은 죄에 갇혀있는데, 하나님으로부터 믿음의 빛이 비춰지지 않으면 율법에 갇혀있으며, 율법을
지키려고 하다가, 결국 율법을 지킬 수 없는 죄인임을 깨닫고, 그리스도에게로
간다는 말씀이다. 그래서 십자가에서 율법에 의해 죽은 그리스도와 연합되는 길만이 구원임을 깨닫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 즉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님의 죽으심이 나의 죽으심으로 받아드려질 때,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믿는 것과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은
다른 이야기다. 앞의 것은 아무나 믿을 수 있다. 왜냐하면
성경적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뒤의 것은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다. 아무리 기적을 많이 경험한 베드로와 같은 사람일지라도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지
않는다. 십자가에서 죽기 전,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의심한 적이 없었다. 그것을 깨닫고 믿었을지라도 십자가 앞에서는 다 예수를
부인하는 자가 된 것이다.
오늘날도 교회 안에서
예배 시작하기 전에『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신앙고백을 한다. 신앙고백을 해도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헛된 고백이 된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연합되지 않으면 아무리 신앙고백을 해도 구원받을
수 없다. 왜냐하면 옛사람은 죽어야 하기 때문이다. 신앙고백을
하는 교회 사람들은 부르심을 입은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 중에서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자는 택하심을
입는 자가 된다. 출애굽하여 홍해바다를 건넌 사람들은 다 부르심을 입은 사람들이다. 그러나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자가 택하심을 입은 자들이다. 그래서
성경에서 가나안이 그리스도의 충만이라고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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