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1장 1-10절
사라가 자기에게 낳은 아들을 이름하여 이삭이라
하였고
(창세기 21장 1-10절)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를 돌보셨고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에게 행하셨으므로 사라가 임신하고 하나님이 말씀하신 시기가 되어 노년의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낳으니
아브라함이 그에게 태어난 아들 곧 사라가 자기에게 낳은 아들을 이름하여 이삭이라 하였고 그 아들 이삭이 난 지 팔 일 만에 그가 하나님이 명령하신
대로 할례를 행하였더라 아브라함이 그의 아들
이삭이 그에게 태어날 때에 백 세라 사라가 이르되 하나님이 나를 웃게 하시니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 또 이르되 사라가 자식들을 젖먹이겠다고 누가 아브라함에게 말하였으리요마는
아브라함의 노경에 내가 아들을 낳았도다 하니라 아이가 자라매 젖을 떼고 이삭이 젖을 떼는 날에 아브라함이 큰 잔치를 베풀었더라 사라가 본즉 아브라함의 아들 애굽 여인 하갈의 아들이 이삭을 놀리는지라 그가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이 여종과 그 아들을 내쫓으라 이 종의 아들은 내 아들 이삭과 함께 기업을 얻지 못하리라 하므로
첫사람 아담은 하나님 나라에서
범죄한 천사를 데리고 이 세상에 오셨다. 즉 육의 흙으로 된 죄의 몸을 입고, 그 몸을 또한 나누어준 것이다. 이 세상은 애굽을 상징한다. 그래서 아브라함(첫사람 아담을 상징)이 그랄에 가서 아비멜렉(사탄)을 만나 것도 이것을 상징하는 것이다. 마지막 아담(그리스도)이 이 세상에 오셔서 이 땅에 있는 자기 백성들을 데리고
하나님 나라로 돌아가는 것이다. 돌아갈 때는 육의 몸을 벗고 돌아간다. 그것이 죽음이다. 육체가 죽는 죽음도 있지만, 죄의 몸(혼:옛사람)이 십자가에서
죽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으므로, 그와 연합되는 자는 함께 죄의
몸이 십자가에서 죽은 것으로 하나님이 인정해주시는 것이다.
하나님이 약속대로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허락하셔서 이삭이 태어났다. 이 아들은 인간의 능력으로 생산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능력으로 주신 것을 의미한다. 이삭과 이스마엘은 다른 존재의
사람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첫사람 아담 안에서 오고, 마지막 아담 안에서 가는 자들은 이삭과 같은
자들이 된다.
이삭은 팔일만에 할례를 했다. 팔(8)이라는 숫자는 새창조를 의미한다. 이삭이 태어났을 때, 아브라함은 100세가 되었다. 100은 하나님의 말씀이 충만되고 완성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하나님이
나를 웃게 하시니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이 말은 사라가 이삭으로 인해서 웃은 것처럼,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성도가 그리스도(이삭)로 인해서 웃을 것이다.
『듣는 자』는 들어서 그 소식이
내 것이 되는 것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떠난 자를 구원하러 오셨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존재들은 죽을 수 밖에
없는 그런 존재들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셨으므로, 그와 연합된 자는 죽은 것으로 하나님이 인정해주시는
것이다. 이보다 더 좋은 복음이 어디에
있는가? 그래서 웃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고 말을 하면서, 날마다 고통스럽고, 탐욕에 다시 빠지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모르기 때문이며, 그래서 웃는 의미를 모르는
것이다.
사라는 이삭 외에는 자식을
낳지 않았다. 그런데, 여기서는 자식들이라는 복수를
사용했다. 사라가 이삭을 낳고 이삭이
또 자식을 낳는 것이다. 말하자면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자들이 그의 자식들이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이
구원을 받는다는 의미다.『아이가 자라매 젖을 떼고 이삭이 젖을 떼는 날에 아브라함이 큰 잔치를 베풀었더라』여기서,『자라매(히브리어:가딸)』는 『성장하다, 강대하다』라는 의미다. 젖을 떼는 단어는 히브리어로『사람을 다루다, 관리하다, 섬기다』라는 의미다. 즉 씨를 생산할 수 있는 상태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씨는 그리스도의 언약의 씨를 의미한다. 언약의 씨가 내재되어 있어서 영적으로 신앙적으로
장성한 상태가 된 것을 의미한다. 큰(라돌) 잔치는 거대한 하나님의 큰
잔치, 즉 떡과 포도주가 있는 잔치(미쉬테)를 의미한다. 떡과 포도주를 가져올 수 있는 분은 멜기세덱
즉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위해 잔치를 베푼 것은 하나님이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떡과 포도주의 큰 잔치를 베푸신 것이다. 그 잔치에 참여하는 자가 복이 있는 것이다. 떡과 포도주는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의미하며, 그 살을 먹고 피를 마시는 자, 곧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는 자가 잔치에
참여하는 것이다. 주님의 만찬에 참여하는 자는
바로 큰 잔치에 참여하는 자가 된다.
사라의 아들 이삭이 자라고, 또 아브라함의 다른 아들 이스마엘이
있었는데, 이스마엘이 이삭을 놀리는 것이다. 사라가 이 광경을 본 것이다. 그래서 사라가 여종인 하갈과
그녀의 아들 이스마엘을 내쫒으라고 아브라함에게 요구하는 것이다. 이스라엘이 예수님을 비난하고 희롱한 것과
같은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이스라엘은
율법에 사로잡혀 있었고, 율법으로부터 참 자유를 주려고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희롱하고, 죽이기까지 했던 것이다. 이삭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이스마엘은 율법을 신봉하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상징한다. 나아가 세상이 예수 그리스도를 미워하고 조롱하는 것이 된다. 심지어 기독교라는 사람들도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는 자는 거의 없다는 것이다. 사라가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쫒는 것(가라쉬:버리는 의미)은 이삭이 태어났으므로,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셨으므로, 율법은 가고 성령의 법이 대체되는
것이다. 이스마엘은 이삭과 함께 기업을
받지 못한다. 즉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만
기업을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것이다. 세상의 것도 좋고 하나님의 것도 가지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하늘의 생명을 가진 자만이 하늘의 것을 가질 수 있다. 육의 몸이 죽고, 영의 몸을 가진 자만이 하늘의
생명이 있는 자가 된다.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 하늘의 것을 얻으려면 육의 것(옛사람)을 내쫒아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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