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2장 1-5절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창세기 22 1-5)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종과 그의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이 자기에게 일러 주신 곳으로 가더니 제삼일에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그 곳을 멀리 바라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종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예배하고 우리가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하고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려고 했다. 이 시험은 어떤 것인가? 이 시험은 아브라함의 속 마음을 끄집어 내려고 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도 시험을 하셨다. 이스라엘에게 시험하신 것은 그들이 율법을 지켜서 의를 이루어보겠다고 했으므로, 그것에 대한 시험이지만, 아브라함은 완전한 의가 무엇인가를 나타내려는 시험인 것이다. 즉 아브라함을 통해서 하나님의 의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를 나타내려 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탄이 미혹하는 시험(히브리어:타아)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다. 사탄이 시험하는 것은 길을 잃게 만드는 것이다. 길을 잃는 것은 방황하는 모양이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시험을 하신 것은 사탄의 시험과 다르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었다. 창세기 15 6절에서『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마찬가지로 하나님을 떠난 모든 탕자들은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을 가지고 있어야만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것이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믿음이다.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시켜 주실 것이라는 믿음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심으로 그의 안에 거하는 자들은 모든 세상죄에서 해방되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의 믿음도 이와 같은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를 믿지 않는 것이다. 옛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자가 되는 것을 믿으면, 하나님이 보시기에 거짓이 없으면,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것이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이삭은 독자가 아니었다. 아브라함에게 이스마엘이라는 아들이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왜 독자(야히드)인가? 야히드는 야하드(하나)라는 단어에서 파생된 단어인데, 하나에서 나온 『유일한』 것이라는 의미다. 아담에게서 하나님이 다른 한편을 끄집어내었다. 본래 하나였는데, 다른 하나를 끄집어 낸 것이다. 하나님이 원래 하나인데, 독생하신 그리스도를 낸 것이다. 그리스도에 대한 그림자로서 이삭에 대해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삭에 대한 독생자의 표현은 그리스도에 대한 표현인 것이다.

모리야 땅의 모리야는 라아(본다)와 야(하나님이라는 의미)의 합성 단어다. 모리야(히브리어:라아야)는 여호와 하나님이 보시는 땅이라는 의미다.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산은 하나님이 계신 곳을 상징한다. 하나님이 정해준 그곳에만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율법 시대는 모리야 산인 예루살렘 성전에서만 하나님을 만날 수 있었다. 그곳이 모리야 산,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 곳, 말하자면 십자가 외에는 하나님을 만날 수 없는 것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지 않는 자는 하나님을 만날 수 없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려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된 바 되어야 하는 것이다.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종과 그의 아들 이삭을 데리고』 굽이 하나인 나귀는 굽이 둘인 소와 달리 부정한 짐승인 것이다. 부정한 짐승은 이방인을 상징한다. 두 사환(나아르:아이)은 율법과 모세를 의미한다. 아이는 젖이나 먹는 자들, 장성한 음식을 먹지 못하는 것에 대한 비유다. 율법은 아이, 복음(의의 말씀)은 장성한 자를 묘사한다.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번제는 올리다 라는 의미를 가진 히브리어『아라』에서 유래된 단어다.  나무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의미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을 때, 지성소와 성막 사이의 휘장이 갈라진 것이다. 나무가 쪼개진 것(바카르)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장벽을 허무는 것이다.  하나님과 하나님을 떠난 죄의 벽이 사라지는 것이다.

『제삼일에』삼(3)은 아버지와 아들과 탕자가 하나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삼십은 아버지와 아들과 탕자가 하나되는 말씀이다.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예수님은 삼십에 공생애를 시작하여 삼년간 하시다가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셨다. 그래서 이 삼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도 함께 죽는 그런 의미를 갖는다. 삼일은 예수님의 공생애의 삼년을 의미한다.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그 곳을 멀리 바라본지라』시간과 장소가 멀리 있음을 의미한다. 즉 먼 미래에 있을 일을 아브라함에게 보게 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마음에 들어가셔서 마음의 눈으로 보게하시는 것이다.  『이에 아브라함이 종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예배하고 우리가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하고』아이(나아르)는 그리스도(이삭)가 율법 아래에 태어난 자라는 것이다.  아브라함은 모리야 산에서 번제를 드리고 아이와 함께 내려오겠다는 것이다. 번제를 드리면 아이가 죽는 것이다. 그런데, 함께 내려오겠다는 것이다. 이 말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번제인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하나님 나라로 돌아가신 후에, 다시 재림하여 올 것이라는 의미다. 재림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는 이방인(나귀)과 너희(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해서 오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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