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4장 42-67절
여호와의 명령대로 그를 당신의 주인의 아들의
아내가 되게 하라
(창세기 24장 42-67절)『내가 오늘 우물에 이르러 말하기를 내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여 만일 내가 행하는 길에 형통함을 주실진대
내가 이 우물 곁에 서 있다가 젊은 여자가 물을 길으러 오거든 내가 그에게 청하기를 너는 물동이의 물을 내게 조금 마시게 하라 하여 그의 대답이
당신은 마시라. . . . . . . . 그가 네게브 지역에 거주하였음이라 이삭이 저물 때에 들에 나가 묵상하다가 눈을 들어
보매 낙타들이 오는지라 리브가가 눈을 들어 이삭을 바라보고 낙타에서 내려 종에게 말하되 들에서 배회하다가 우리에게로 마주
오는 자가 누구냐 종이 이르되 이는 내 주인이니이다 리브가가 너울을 가지고 자기의 얼굴을 가리더라.』
리브가는 물을 마신 약대를
타고 이삭에게로 갔다. 리브가가 약대에게 물을 마시게 할 때는 고생을 많이 했지만 신부로서 혼인잔치에
갈 때 바로 그 약대를 타고 갔다. 사막을 건널 때 약대를 타고 가야한다. 성도가 시험과 환난을 당하지만, 시험을 통해서 얻은 정금
같은 믿음으로 하나님 나라의 혼인잔치에 들어가는 것이다.
여자(리브가)가 물을
가져와서 마시고, 낙타도 마셨다는 것은 율법을 이루었다는 것이다. 율법을 이룬다는 것은 율법을 통해서
스스로 죄인임을 깨닫고, 율법을 지키는 것을 포기하고, 주님께 나가는 것이다. 리브가가 모든 물을 다
마시게 하므로, 엘리에셀이 생각하기를 이 여인이 하나님이 주신 형통한 여인이구나 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코걸이와 팔지를
주었던 것이다. 내 주인 곧 하나님을 공의의 하나님이 되게 하려면 고하라는 것이다. 죄는 포장한다는 의미다. 포장된 속은 어둡다는 의미다. 여기에『라반과 브두엘이 대답하여 이르되 이 일이 여호와께로 말미암았으니 우리는 가부를 말할 수 없노라』라고 했다. 하나님의 뜻에 의해 결정될
일을 말하고 있다.
『리브가가 당신 앞에 있으니 데리고 가서 여호와의 명령대로 그를 당신의 주인의 아들의 아내가 되게 하라』하나님을 떠난 자들(리브가)이 그리스도(이삭)와 하나가 되는 것이다. 율법(라반)이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는 것이다. 앞으로 이런 일들이 일어날 것을 말하고
있다. 이루어진 일은 그리스도를 만나는 일이다. 종은 율법을 받은 자들이다. 그러나 율법을 버린 자들은
종이 아니라 친구(아들)가 된다. 하나님의 종은 그리스이시다. 아브라함의 종은 그리스도를
상징한다.『땅에 엎드린다』는 말은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리스도가 하나님을 떠난
지체들을 만나서 하나가 되는 것이다. 즉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하나님과
하나가 되게 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율법에 의해서 죽으셨다. 율법을 먹은 것이다.
유숙하는 것은 밤을 지낸다는 의미다. 그리스도께서 그들의 신부를 구하는데, 어둠에 있는 신부와 함께
일시적이나마 어둠에 함께 있는 것이다. 리브가에게 준 것과 오라버니와 어머니에게
준 것은 서로 다른 것이다. 리브가에게 준 것은 은금 패물 의복이다. 하나님 말씀과 의의 옷이
되는 것이다. 오라버니와 어머니에게는 보물이다. 보물이지만 그 의미를 모르므로 그냥 보물이라고
하는 것이다. 율법 안에 있는 보물은 그리스도이시다. 그런데, 그것을 발견하지 못하므로 그냥 보물로 되는
것이다.
『리브가의 오라버니와 그의 어머니가 이르되 이 아이로 하여금 며칠 또는 열흘을 우리와 함께 머물게 하라 그 후에 그가 갈 것이니라』그들은
리브가의 가는 길을 방해하는 모습이다. 율법을 지키려고 하는 자들은 그리스도를
만나는 일을 방해하는 자들이 된다. 이런 일이 아침에 일어난 것이다. 어둠이 지나서 아침이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이신 신랑이 오셔서 신부를 부르는 것이다. 아침은 바로 이런 의미를 갖는다. 엘리에셀이 아침에 돌아가려고
하므로 라반과 그의 어머니가 훼방하는 것이다. 열흘에서 열은 십계명을 의미한다. 십계명을 지키다가 가도록
하라는 것이다. 마귀의 방해인 것이다.
『리브가를 불러 그에게 이르되 네가 이 사람과 함께 가려느냐 그가 대답하되 가겠나이다』리브가는 가겠다고 했다. 율법이 아니라 이삭(그리스도)에게 가고자 하는 것이다. 리브가가 일어나는 것은 언약이 성취되어진
것을 의미한다. 리브가의 종들도 언약의 성취다. 그리스도의 신부도 율법
위에 올라있는 모습이다.『그 종이 리브가를 데리고 가니라』종(엘리에셀)이 그리스도(이삭:신랑)에게로 신부를 데리고 가는 것이다.
『그 때에 이삭이 브엘라해로이에서 왔으니』브엘라해로이에서
브엘(우물)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라해(소몰이 막대)는 누구를 이끌고 가는 의미다. 범죄한 천사의 영을 그리스도가
데리고 와서 다시 데리고 가는 모습이다. 로이(선지자)는 하나님이 세우신자다. 이삭이 남방에서 브엘라해로이로 들어온 것이다. 남방(네게브)은 하나님이 없는 세상을 상징한다. 애굽으로부터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 곳으로 들어온 것이다. 히브리 원본에는 들어오는 것이 두번 반복되어
있다.『들어오고 들어왔다』라는 것이다. 그림자가 아니라 참형상이 있는 것이다. 브엘라해로이가 그림자는 이스라엘이고, 참형상은 하나님이시다. 이삭(그리스도)이 한번은 이스라엘(그림자
양)에게 왔으며, 다른 하나는 하나님 나라(말씀)로 들어왔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에게 들어간 것은 애굽으로부터 어린양의
피로 이스라엘 땅(가나안)으로 들어온 것이고, 하나님 나라로 들어온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휘장을 찢고, 하나님 나라로 들어온 것이다.
『이삭이 저물 때에 들에 나가 묵상하다가』들은 사데(이스라엘의 초원)을 의미한다. 묵상은 율법이 이루어진 것인지를 생각하시는
것이다. 그런데, 리브가가 낙타를 타고 오는 것이다. 『들에서 배회하다가 우리에게로
마주 오는 자가 누구냐 종이 이르되 이는 내 주인이니이다 리브가가 너울을 가지고 자기의 얼굴을 가리더라』여기에서 종은 그리스도에게로 신부를 인도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자가 된다. 리브가가 너울을 가지고 얼굴을 가리는 것은
자기를 부인하는 모습이다. 나를 부인할 때, 주님이 신부를 데리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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