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6장 5-16절
리브가로 인하여 죽지 않도록
(창세기 26장 5-16절) 이는 아브라함이 내 말을 순종하고 내 명령과 내 계명과 내 율례와 내 법도를 지켰음이라 하시니라 이삭이 그랄에 거주하였더니 그 곳 사람들이 그의 아내에 대하여 물으매 그가 말하기를 그는 내 누이라 하였으니 리브가는
보기에 아리따우므로 그 곳 백성이 리브가로 말미암아 자기를 죽일까 하여 그는 내 아내라 하기를 두려워함이었더라 이삭이 거기 오래 거주하였더니 이삭이
그 아내 리브가를 껴안은 것을 블레셋 왕 아비멜렉이 창으로 내다본지라 이에 아비멜렉이 이삭을 불러 이르되 그가 분명히 네 아내거늘 어찌 네 누이라
하였느냐 이삭이 그에게 대답하되 내 생각에 그로 말미암아 내가 죽게 될까 두려워하였음이로라 아비멜렉이 이르되 네가 어찌 우리에게 이렇게 행하였느냐
백성 중 하나가 네 아내와 동침할 뻔하였도다 네가 죄를 우리에게 입혔으리라 아비멜렉이 이에 모든 백성에게 명하여 이르되 이 사람이나 그의 아내를
범하는 자는 죽이리라 하였더라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 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 양과 소가 떼를 이루고 종이 심히 많으므로 블레셋 사람이 그를 시기하여 그 아버지 아브라함 때에 그 아버지의 종들이 판 모든 우물을
막고 흙으로 메웠더라 아비멜렉이 이삭에게 이르되 네가 우리보다 크게 강성한즉 우리를 떠나라
그랄은 히브리어로 게라르로서 그랄지방을 의미한다. 게라르는 기멜(낙타라는 의미:율법을
상징)과 레시(분리되는 말씀)라는 단어가 합성된 단어다. 낙타가 분리되는 말씀으로 세상에 와서
문을 향해 서있다. 율법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다시 돌아가야 할 그 장소가 바로 게라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랄은 하나님의 분리되는 말씀으로 세상에 나온 자들, 그러나
다시 돌아가야 할 그곳이라는 것이다. 그랄이 아람나하라임인 것이다. 그랄에
거주하는 사람들을 나그네라고 한다. 나그네는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고, 스스로 하나님없이도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하나님 나라를 이주하여 세상에 잠시 살아가는 자들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들이 하나님 말씀을 듣고, 깨달아서 다시 돌아가야 할 그곳(그랄)에 거주하는 자들이다.
『그 곳 사람들이
그의 아내에 대하여 물으매』그 곳은 히브리어로 마콤이라고 했다. 맴(말씀)이라는 글자와 쿰(일어서다)이라는
단어가 결합된 글자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다시 살아나는 것을 의미한다.
그랄은 하나님 말씀으로 다시 살아나는 그 곳을 의미한다. 그곳 사람들은 에노쉬다. 에노쉬는 하나님이 세상에 보냈지만 성령 안에 있는 자들을 의미한다. 그런데, 그곳 사람들이 이삭에게 리브가가 누구냐 라고 물으니 누이라고 대답했다. 마찬가지로
아브라함도 사라를 누이라고 말했다. 누이는 형제자매로서 하나가 되는 지체라고 말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아브라함과 이삭은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사라나 리브가는 그리스도와
연합된 지체를 상징하는 것이다.
아브라함이 사라를
누이라고 속이고 사라가 아비멜렉의 궁으로 들어간 것은 하나님을 떠난 모든 지체들은 세상의 종으로 이 땅에 들어온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통하여 바로의 궁으로부터 나온 것은 다시 하나님 나라로 돌아가는 것을 상징한다. 모든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의 영들이었는데, 범죄하여 이 세상에
왔으며, 그리스도께서 그의 지체들을 구한다는 것이 구원의 예정이다. 사라나 리브가가 이 세상적으로 아브라함과 이삭의 누이(사촌)였는데, 그들이 아브라함과
이삭의 아내들이 되었다. 즉 하나님을 떠나 이 세상에 온 지체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어,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면 마귀가 어떻게 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요한1서 3장 9절에서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는 죄를 짓지 않는다고 말하고, 요한1서 5장 18절에서는 악한
자가 그를 만지지도 못한다고 말하고 있다. 리브가는 이삭(그리스도의
상징)의 아내다. 아비멜렉이 어떻게 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하나님이 그녀를 지켜주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이나 이삭이 애굽으로 내려가다가 바로나 아비멜렉을 만났을 때 죽게될까봐
두려워했다. 아브라함은 다른 사람에 의해 죽임을 당하지 않고, 이삭은
그리스도의 상징이므로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 아브라함에 의해 죽게 되었다. 물론 숫양이 대신해서 모리야
산에서 죽었지만, 이삭은 죽은 자와 같이 되었다. 이삭은
왜 아비멜렉을 만났을 때, 죽을까봐 두려워하며, 죽지 않으려고
했는가? 이미 그는 죽음을 맛보았다. 하나님이 이삭을 이미
죽은 자로 여기시는데, 이삭을 통해, 죽음에 대해서 모든
사람들이 자기 생각대로 생각할 수 있음을 보여주신다. 이는 므리바의 물에서도 명백하게 드러난다.
모세가 므리바에서 백성들이 물 때문에 거친 항변을 하자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하나님께서
바위에게 명하여 물을 내게 하라고 하셨는데, 모세는 바위를 두 번 지팡이로 쳐버렸다. 하나님이 하신 명령과 다르게 모세의 자신의 생각대로 행하므로 하나님이 화를 내시고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지지 아니한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신다. 모세는 율법의 대표였지만,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다. 율법에 대해서 죽어야만 하는 이치를 보여주신다.
『이삭이 그에게
대답하되 내 생각에 그로 말미암아 내가 죽게 될까 두려워하였음이로라』이삭이 죽음을 두려워한 이유 중의 하나가 아내가 아리따웠다는 것이다. 아리따웠다는 것은 토브(선)다. 토브의 본래의 의미는 율법을 통해서 이 땅에 온 자들이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으로 하나님의 집으로 들어간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 집은 성전을 의미한다. 성도가 성령 안에서
하나님과 하나되는 곳이 성전이다. 아내가 아리따웠다는 것은 이미 그리스도의 지체가 된 자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 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 』그 땅은 그랄이 아니라 에렛츠다. 하나님이 농부의 씨뿌리는 비유를 통해서 천국에 감추어진 비밀을 말씀한다. 백배는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이 세상(땅:에렛츠)에서 과부, 고아, 세리, 창기 들이 회개하여 열매를 얻은 것이다. 그 사람은 이쉬(남자)며,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그래서 창대하고 왕성하여 거부가 된 것은 영적으로
자라난 자를 상징하는 것이다. 영적으로 자라난 것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자에게 성령 충만을 얻는 것과
같은 것이다.
사탄의 입장에서는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자가 많이 생기므로 좋지 않은 것이다.『블레셋 사람이 그를 시기하여 그 아버지
아브라함 때에 그 아버지의 종들이 판 모든 우물을 막고 흙으로 메웠더라』사탄은 하나님의 말씀이 더 이상 나오지 못하게 막는다. 성경을 왜곡하거나, 기복신앙을 퍼뜨린다. 믿는 자들로 하여금 세상을 바라보게 만든다. 마태복음 25장 25절에서 탈란트의 비유처럼 땅에 묻어버리는 악한 종의 이야기가
등장한다.『아비멜렉이 이삭에게 이르되 네가 우리보다 크게 강성한즉 우리를 떠나라 』복음은 이스라엘을
떠나 이방인에게 넘어간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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