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9장 11-24절
그를 사랑하는 까닭에 칠 년을 하루 같이 여겼더라
(창세기 29장 11-24절) 그가 라헬에게 입맞추고 소리 내어
울며 그에게 자기가 그의 아버지의 생질이요 리브가의 아들 됨을 말하였더니 라헬이 달려가서 그 아버지에게 알리매 라반이 그의 생질 야곱의 소식을
듣고 달려와서 그를 영접하여 안고 입맞추며 자기 집으로 인도하여 들이니 야곱이 자기의 모든 일을 라반에게 말하매 라반이 이르되 너는 참으로 내
혈육이로다 하였더라 야곱이 한 달을 그와 함께 거주하더니 라반이 야곱에게 이르되 네가 비록 내 생질이나 어찌 그저 내 일을 하겠느냐 네 품삯을
어떻게 할지 내게 말하라 라반에게 두 딸이 있으니 언니의 이름은 레아요 아우의 이름은 라헬이라 레아는 시력이 약하고 라헬은 곱고 아리따우니 야곱이
라헬을 더 사랑하므로 대답하되 내가 외삼촌의 작은 딸 라헬을 위하여 외삼촌에게 칠 년을 섬기리이다 라반이 이르되 그를 네게 주는 것이 타인에게
주는 것보다 나으니 나와 함께 있으라 야곱이 라헬을 위하여 칠 년 동안 라반을 섬겼으나 그를 사랑하는 까닭에 칠 년을 며칠 같이 여겼더라 야곱이
라반에게 이르되 내 기한이 찼으니 내 아내를 내게 주소서 내가 그에게 들어가겠나이다 라반이 그 곳 사람을 다 모아 잔치하고 저녁에 그의 딸 레아를
야곱에게로 데려가매 야곱이 그에게로 들어가니라 라반이 또 그의 여종 실바를 그의 딸 레아에게 시녀로 주었더라
야곱이 라헬과
입맞추고 소리내어 울었다. 왜냐하면 성령 안에서 하나님을 떠난 자라는 것을 서로 알았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도 이런 진리의 말씀을 깨달은 자가 서로 만나면 형제를 만난 것 같이 이렇게 기뻐할 것이다.『그에게 자기가 그의 아버지의 생질이요 리브가의 아들 됨을 말하였더니 라헬이 달려가서 그 아버지에게 알리매』원문은
생질이 아니고, 형제다. 라헬의 아버지는 라반이고, 리브가와는 형제인 것이다. 라반이 그의 딸 레아의 말을 듣고 와서
라헬이 한 것처럼 야곱을 반기며 입맞추고, 집으로 인도했다. 라반이
입맞추는 것은 라헬이 그러한 것과는 다른 의미를 갖는다. 라헬은 성령 안에서 하나님을 떠난 것을 함께
깨달은 자이지만, 라반은 자기의 일을 하는 것을 기뻐하는 자이기 때문이다.
『야곱이 자기의
모든(콜) 일을 라반에게 말하매 라반이 이르되 너는 참으로
내 혈육이로다 하였더라』라반에게는 육적인 생각으로 야곱을 혈육으로 대하는 것이다. 모든 일은 하나님의
일(엘레)을 의미한다. 엘레는
하나님의 말씀 안에 보여지는 모든 것이라는 의미다. 이 말은 창세기
2장 4절에서『여호와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때에 천지의 창조된 대략(엘레)이 이러하니라』창세기 6장 9절에서도『노아의 사적(엘레)은
이러하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가 하나님과 동행했으며』하나님을 떠나 온 자가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내용이 등장하면, 하나님의 일(엘레)가
이러한 의미로 사용되는 것이다.
야곱이 집을
떠나기 전에 이삭으로부터 모든 축복의 말씀을 들었다. 그 축복은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의 일들이 야곱에게
이루어질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야곱은 이러한 이야기를 라반에게 말하는 것이다. 라반은 그 이야기를 들었지만, 하늘의 것이 아니라, 세상의 것으로 들려지게 되는 것이다. 라반은 여전히 율법에 사로
잡혀 있는 자이기 때문이다. 라반은 야곱에게 나의 골육이라고 말했는데,
땅의 눈으로 볼 때는 육체의 골육이지만, 영의 눈으로 볼 때는 하나님 나라의 형제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라반은 육의 골육으로만 바라본다.
『야곱이 한
달을 그와 함께 거주하더니 라반이 야곱에게 이르되 네가 비록 내 생질이나 어찌 그저 내 일을 하겠느냐 네 품삯을 어떻게 할지 내게 말하라』한 달(호데시)이라는 의미는 울타리에서 문을 찾을 때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는
새로운 달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야곱이 라반의 집에 온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성령의 역사를 이루기 위해 문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삯(마스코레트)은 말씀과 성령으로 분리되어 세상에 와서 400세겔을 낸 사람들이 받는 것이 삯이다. 삯은 하늘의 생명을 받게
된다. 그런데, 야곱은 딸을 달라고 한다. 삯이 딸인 것이다. 야곱(그리스도의
상징)은 하나님 나라를 떠나 세상에 와서, 그의 지체를 아내로
만나야만 하는 것이다.
라반은 두 딸이
있었는데, 레아(언니)과
라헬(동생)이였다. 이는
두 염소를 상징한다. 마치 에서(율법)와 야곱(그리스도)의 모양이다. 레아는 땅에서 큰 자, 하나님의 말씀으로 세상에 보내져, 둘째 사망에 삼켜지는 자를 의미한다. 라헬은 세상에서 작은 자(카탄)로서, 분리되는 말씀으로
세상에 와서 은혜로 구원이 이루어져 안식에 들어가는 자를 상징한다. 땅에서 첫째 사망으로 끝나고 하나님
나라로 구원받는다. 그러므로 둘째 사망은 피하게 된다.
『레아는 시력이
약하고 라헬은 곱고 아리따우니 야곱이 라헬을 더 사랑하므로 대답하되 내가 외삼촌의 작은 딸 라헬을 위하여 외삼촌에게 칠 년을 섬기리이다』레아가
시력이 약하다는 것은 이 세상에 와서 자기의 상태가 어떠한지를 발견하기가 쉽지 않은 상태를 의미한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을 떠난 죄를 깨닫기가 둔하다는 것이다. 라헬은 모양이 곱다(야페)는 것이다. 모양은
하나님의 분리된 말씀의 권능의 힘으로 삼켜지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께 삼켜지는 것은 아름다운 것이다. 성령 안에서 하나님과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말씀 안에서 삼켜져야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자기를 부인하라고 하셨다. 자기를 부인하면, 하나님이 보이는 것이다. 그래서 라헬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바로
깨닫는 자를 상징한다.
야곱이 라헬(아헤브)을 사랑했다. 아헤브는
하나님이 나타나시는 성전을 의미한다. 야곱이 라헬을 바라볼 때, 하나님의
성전을 바라보는 것이다. 그래서 야곱이『내가 외삼촌의 작은 딸 라헬을 위하여 외삼촌에게 칠 년을 섬기리이다』라고
말한다. 야곱의 7년 일한 삯은 아내이다. 예수님이 세상에서 일한 삯은 제자들이다. 하나님을 떠난 자들이 깨닫고
회개하여 하나님께 돌아가는 영들이다. 아내는 이 같은 자를 의미한다.
야곱은 아내를
얻기 위해 칠년을 며칠(에하드)같이 일했다고 한다. 에하드는 하나를 의미한다. 날은 욤으로 하루처럼 여겨졌다는 것이다. 칠년이 하루인 것이다. 칠년은 육년에 일년을 더하고 일곱번째 되는
해가 바로 안식이다. 희년은 칠년의 일곱번째 해를 다 무효로 하고 그 다음 해를 다시 돌아가는 해로
하는 것이다. 칠년을 하루같이 일한 것은 칠년을 다 마치고 그 하루(안식)가 되는 것이다.
『야곱이 라반에게
이르되 내 기한이 찼으니 내 아내를 내게 주소서 내가 그에게 들어가겠나이다』기한이 찼다는 것은 때가 되었다는 것이다. 성경에 율법의 때는 요한의 때까지라는 말이 있다. 갈라디아서 4장 4절에서도『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은』이라고 말한다. 마가복음 1장 15절에서도 같은 의미를 말하고 있다. 그리스도의 때, 야곱의 때가 차다는 것이다. 야곱(그리스도)이 자기 지체를 달라고 한다.
라반이 잔치를
벌이고, 밤에 라헬대신 레아를 야곱에게 들여보냈다. 여종
실바도 레아에게 갔다. 잔치는 하늘의 혼인잔치를 상징한다. 밤은
흑암을 상징한다. 밤의 상태에 있는 자들(레아:죄인)이 주님을 만나게 된다. 레아(먼저 된자)는 첫사람 아담 안에서 세상에 온 자, 라헬(나중 된자)은 마지막
아담 안에서 하나님 나라로 돌아가는 자를 상징한다.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