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5장 4-32절
족보에 나타난 동행의 삶
(창세기 5장 4-32절)『아담은 셋을 낳은 후 팔백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그는 구백삼십 세를 살고 죽었더라
셋은 백오 세에 에노스를 낳았고 에노스를 낳은 후 팔백칠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그는 구백십이 세를 살고 죽었더라 에노스는 구십 세에 게난을
낳았고 게난을 낳은 후 팔백십오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그는 구백오 세를 살고 죽었더라 게난은 칠십 세에 마할랄렐을 낳았고 마할랄렐을 낳은
후 팔백사십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그는 구백십 세를 살고 죽었더라 마할랄렐은 육십오 세에 야렛을 낳았고 야렛을 낳은 후 팔백삼십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그는 팔백구십오 세를 살고 죽었더라 야렛은 백육십이 세에 에녹을 낳았고 에녹을 낳은 후 팔백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그는 구백육십이 세를 살고 죽었더라 에녹은 육십오 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그는
삼백육십오 세를 살았더라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므두셀라는 백팔십칠 세에 라멕을 낳았고
라멕을 낳은 후 칠백팔십이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그는 구백육십구 세를 살고 죽었더라 라멕은 백팔십이 세에 아들을 낳고 이름을
노아라 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시므로 수고롭게 일하는 우리를 이 아들이 안위하리라 하였더라 라멕은 노아를 낳은 후 오백구십오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그는 칠백칠십칠 세를 살고 죽었더라 노아는 오백 세 된 후에 셈과 함과 야벳을 낳았더라』
이 족보는 하나님의 형상을 이어받는 하나님의 백성들에 대한 말씀이다.
하나님의 형상을 이어받는 자들은 이 땅에서 죽는 자의 모습을 나타낸다. 역설적으로 죽어야
하는 삶은 생명을 낳게된다는 것이다. 생명을 해산하는 여자들, 즉
교회의 삶이 죽고 다시 태어나는 모습을 나타낸다. 성도가 십자가를 부여잡고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 것은
죄와 사망의 땅에서 생명으로 들어가기 위한 필수적인 것이다. 반대로 자기를 위한 삶을 살아가는 자, 즉 악인들은 죽지 않으려고 여러가지 방법으로 자기 만의 성을 쌓고 있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둘째 사망에 처해지게 된다. 그러나 이 땅에 사는
동안에 옛사람이 죽는 그런 삶을 사는 자들은 영원한 부활의 생명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왜 이 땅에서
옛사람이 죽어야만 하는가? 그 이유는 옛사람이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탐욕의 마음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마음 깊은 곳에 이 마음이 숨어져 있는 것이다.
이 삶이 바로 창세기 5장의
족보 속에서 나타난 에녹의 삶이다. 에녹의 삶은 믿음이 좋기 때문에 죽지않고 하나님 나라로 휴거된다는
단순한 그런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의 생명을 가지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강권에 의해 건짐을 받게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창세기 5장의 의미는 이 땅에서 구원받은
성도가 해야 할 일에 대한 말씀을 전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일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일이다. 예수를 믿는 것은 그의 죽으심과 연합되고, 그의 부활과 연합되는
것을 믿는 것이다. 죽음을 빼고 단순히 부활만 믿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죽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래서 그 하나님의 일에 대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야만 하는 것이다.
창세기 5장의 계보는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복이 이어져 내려오고 있음을 알려주신다. 그 복은 세상의 종말 때까지 이어질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의 복의 전달자가 된다. 하나님의
복을 전달하는 자는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자들이다. 하나님을 닮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라는 것이다. 어떻게 인간이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가?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가능한 일이다. 하나가 되는 것과 닮는 것은 분명히 다른 것이다. 닮아가는 삶은 자기의 노력이 들어가지만, 하나가 되는 삶은 자기를
포기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는 삶이 되는 것이다.
창세기 5장 24절에서『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히브리서 11장 5절에서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으니 하나님이
그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는 옮겨지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는
어떤 자인가?
믿음은 하나님이 보내신 자를 믿는 일이다. 요한복음 6장 29절에서『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하나님이 보내신 자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이시다. 그 분을 믿는 것은 그분과 함께 죽고, 부활하는 것을 믿으며, 이 세상의 모든 죄악에서 벗어나 하나님 나라로 다시 돌아간다는 것을 믿는 것이다. 믿음이 하늘로부터 온 자가 그리스도의 계시를 받은 자이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들이다. 그래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자가 된다. 물에서
육의 몸이 죽고, 성령으로 영의 몸으로 거듭나게 되는 것이다. 에녹과
같이 데려감을 당할 수 있는 영의 몸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15장 44절에서『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 그래서 예수와 죽은 자는 예수와 함께 부활하여(거듭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있는 것이다.
에녹은 365세를 살았다고 말한다. 365라는 말은 1년 365일을
생각하게 하지만, 에녹은 전 생애를 걸쳐서 하나님이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았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믿음을 사는 사람들은 바로 에녹과 같은 삶이었다고 하나님이 인정해주시는
것이다. 므두셀라는 창을 던지는 자라는 의미를 갖는다. 이
자가 죽으면 심판이 임한다는 것이다. 심판이 이미 던져졌다는 것이다.
에녹이 자기 아들을 므두셀라로 지었다는 것은 므두셀라가 죽는 날(969세) 하나님의 심판이 이 땅에 임할 것이라는 계시를 받은 것이다. 에녹은
하나님의 심판이 임한다는 사실을 알고 살았던 것이다.
므두셀라가 살던 시대는 노아의 홍수심판이
가까운 시대였다. 므두셀라는 969세를 살았는데, 아담 때부터 노아까지 10대를 보았다. 므두셀라가 243세에 아담이 죽었다. 아담과 므두셀라는 200년이 넘는 세월동안 같이 살았다. 아담은 므두셀라에게 에덴동산에서
일어난 일을 말해주었을 것이다. 므두셀라가 243세때 아담
할아버지가 죽는 것을 목격했다. 므두셀라를 포함한 많은 아담의 후손들은 하나님 앞에 범죄하게 되면 반드시
죽음이 찾아오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에녹이 므두셀라 이름을『죽는 날에 하나님의 심판이 올것이다』
라는 뜻으로 지었다. 그리고 그 이름을 계속해서 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므두셀라는 죽음, 재앙, 심판에서 구원받는 길을 노아와 같이
전했을 것이다.
셋의 7대손인 라멕은 777세를
살다가 죽은 사람이다. 라멕은 자신에게 부여된 인생 속에서 믿음의 후손 노아를 낳는다. 그리고 노아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있음을 예언하여 말한다. 그는 노아라는
아들이 『땅이 저주 받은 뒤에 수고로이 일하는 우리를 이 아들이 안위하시리라』(창 5:29)고 말했다. 라멕은 노아를 통하여 하나님의 구원을 보는 믿음의
눈이 있었고, 소망으로 노아를 양육하였고, 노아를 통하여
하나님의 구원의 사랑이 다시 시작된다는 것을 보았다. 하나님을 따라 살던 라멕은 영적으로 강한 자가
되어 범죄가 관영하였던 홍수 이전의 시대를 청산하고, 하나님의 심판을 준비하는 자가 된 것이다. 라멕이라는 이름이 또 있었다.
가인의 계통을 따라 아담의 7대손으로 나타난 라멕은 한 마디로 무자비한 사람이다. 그는 가인처럼
또 다시 살인의 죄를 범한 사람이다. 자신에게 상처를 입힌 소년을 살해했다. 그는 살인 후, 그것을 노래로 지어 자신의 아내 아다와 씰라를 향하여
들려준다. 결혼제도를 파괴한 사람 라멕은 인류 최초로 살인을 한 가인과는 달리 두려움조차 없다. 가인은 하나님 앞에서 두려워하면서 하나님의 보호를 간구하였다. 그러나
라멕은 살인을 두려워하지도 않고 심판을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라멕에게서 죄가 관영하였으며 라멕은 세상에
가득찬 죄의 정점에서 인간타락의 극단적인 모습을 자세히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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