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7장 13-16절
여호와께서
그를 들여보내고 문을 닫으시니라
(창세기 7장 13-16절) 곧
그 날에 노아와 그의 아들 셈, 함, 야벳과
노아의 아내와 세 며느리가 다 방주로 들어갔고 그들과 모든 들짐승이 그 종류대로, 모든 가축이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이 그 종류대로, 모든 새가 그 종류대로 무릇 생명의
기운이 있는 육체가 둘씩 노아에게 나아와 방주로 들어갔으니 들어간 것들은 모든 것의 암수라 하나님이 그에게 명하신 대로 들어가매 여호와께서 그를
들여보내고 문을 닫으시니라
그 날에서
날은 히브리어 원어로『뼈의 날』이라고 한다. 『뼈의 날』은 할례를 받게하던 그 날을 의미한다. 창세기 17장 23절에서 『이에 아브라함이 하나님이 자기에게 말씀하신 대로 이 날에 그 아들 이스마엘과 집에서 태어난 모든 자와 돈으로 산
모든 자 곧 아브라함의 집 사람 중 모든 남자를 데려다가 그 포피를 베었으니』
할례는 육체의
죽음을 상징한다. 오늘날 세례와 같은 의미인 것이다. 그래서
할례는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몸의 흔적을 의미한다. 그리고 출애굽기 12장 17절에서도『너희는 무교절을 지키라 이 날에 내가 너희 군대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었음이니라 그러므로 너희가 영원한 규례로
삼아 대대로 이 날을 지킬지니라』이 날이라는 것은 하나님 나라를 떠나 이 세상에 온 하늘의 군대라는 의미를 갖는다. 하나님이 하늘의 군대를
이끌었던 그 날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이스라엘 백성을 군대라고 표현했으나 사실을 하나님 나라를 떠난 탕자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런데, 탕자들을 이 세상 죄
가운데서 나오게 하신 그 날을 의미한다.
방주에 들어가는
날은 바로 죄 가운데 있는 이 세상에서 벗어나는 그 날을 의미하는 것이다. 레위기 23장 14절에서『너희는 너희 하나님께 예물을 가져오는 그 날까지 떡이든지 볶은 곡식이든지 생 이삭이든지 먹지 말지니 이는 너희가
거주하는 각처에서 대대로 지킬 영원한 규례니라』하나님께 예물을 드리러 오는 그날까지 먹지 말라는 것이다. 하나님 아버지께 오는 그날에 예물을 먹는 것이다. 바로 그 날이 뼈의 날이다.
노아와 자식들과
모든 짐승들이 방주에 들어갔다는 것은 모든 살아있는 생명체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었다는 의미를 갖는다. 모든 영이 있는 육체들(네피쉬하이)이 방주 안으로 들어갔다. 이 생명체는 창세기 1장에서 창조된 생명체와 같은 생명체를 의미한다. 즉 새창조인 것이다. 방주에 들어간 생명체는
창세기 1장에서 창조된 그 창조물이나, 방주에 들어가면 그 생명체는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이다. 성도가 그리스도와 연합될 때 이전의 사람은 죽었으며,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다시 창조되는 것과 같은 의미다. 몸의 형태는 바뀐 것 같지 않으나, 이미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죽고, 다시 태어나는 생명체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다시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축복을 하신다.『들어간 것들은 모든 것의 암수라』창세기 1장에서도 암수라고 표현되었으나 창세기 2장에서는 남자와 여자로 표현된다. 남자와 여자의 의미는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표현할 때 사용되는 것이다. 에베소서 5장 31-32절에서『그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하나님을 떠난 모든 영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는 것이다. 창세기 7장에서 모든 네피쉬하이(살아있는 생명체)가 영으로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순간을 말하는 것이다. 노아의 방주는 장차 그리스도가 모든 살아있는 생명체의 영들을 구원하러 갈 것이라는 것을 예표하는 것이다.
『여호와께서
그를 들여보내고 문을 닫으시니라』문은 그리스도이시다. 문을 열고 닫는 분은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이 그리스도에게 문을 열고 닫을 수 있는 권세를 주셨다. 요한복음 10장 3절에서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마태복음 8장 12절에서 『그들이 사러 간 사이에 신랑이 오므로 준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힌지라』
하나님이 직접 육신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 와서 그들의 영들을 데리고 다시 하나님 나라로 돌아가는 것이다. 문을 여는 것은 첫사람 아담으로 이 세상에 오시고, 문을 닫는 것은 마지막 아담으로 다시 하나님 나라로 돌아가시는 것이다. 하나님이 방주를 닫는 때는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있는 생명체가 하나가 될 때 닫는 것이다.
예수님은 양의 문이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양의 목자는 문으로 들어간다』고 하셨다. 이 말씀에 비추어
볼 때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에게 『너희들이 진정으로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고 싶은 거냐? 그렇다면 나에게로
오너라. 내가 베푸는 구원을 받아들이고 나에게 배워라.』
예수님은 이스라엘의 지도자임을 자처하는 그들에게 참된 리더십이 무엇인지 이렇게 일러주고 계시는 것이다.
선한 목자와 삯꾼의 차이는 분명하다. 삯꾼에게 양은 자기 양이 아니다. 그저 양을 치고 삯을 받는다. 늑대가 오면 목숨을 걸고 양을 지키는 사람이 아니라 저 살기 위해 양을 버리고 달아나버린다. 그러나 선한 목자는 양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버린다. 삯꾼을 삯을
위해 양이 필요하지만 참된 목자는 양을 위해 자신이 있어야 함을 안다. 참된 목자와 양 사이에는 앎이
있다. 이 앎은 목자와 양간의 영적인 하나됨을 말한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8장 40절에서『지금 하나님께 들은 진리를 너희에게 말한 사람인 나를
죽이려 하는도다 아브라함은 이렇게 하지 아니하였느니라』지금 예수를 죽이려한다는 것이다. 히브리 백성들은 예수님은
거짓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이렇게 말씀하신다. 예수를 믿어서 왔는데,『나를
죽이려 한다』고 말씀했다. 예수님의 말씀은『내 말에 거하지 못하면』다 죽이려 한다는
것이다. 히브리 백성들은 오병이어의 기적을 체험하고, 죽은
자를 살리는 것을 목격하고『저분이 하나님이 보내신 자이구나』라고 믿었지만, 예수님은 그들이 말씀에 거하는
자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다. 오늘날도 성경 말씀이『믿는다고 하는 사람의 생각』과 다르게 이해되면,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말씀과 자신의 생각이 다르면, 받아드리지 않는 것이 말씀에 거하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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