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36장 1-9절
형제 야곱을 대면하여 나갔다
(창세기 36장 1-9절) 『에서 곧 에돔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에서가 가나안 여인 중 헷 족속 엘론의 딸 아다와 히위 족속 시브온의 딸인 아나의
딸 오홀리바마를 자기 아내로 맞이하고 또 이스마엘의 딸 느바욧의 누이 바스맛을 맞이하였더니 아다는 엘리바스를 에서에게 낳았고 바스맛은 르우엘을
낳았고 오홀리바마는 여우스와 얄람과 고라를 낳았으니 이들은 에서의 아들들이요 가나안 땅에서 그에게 태어난 자들이더라 에서가 자기 아내들과 자기
자녀들과 자기 집의 모든 사람과 자기의 가축과 자기의 모든 짐승과 자기가 가나안 땅에서 모은 모든 재물을 이끌고 그의 동생 야곱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갔으니 두 사람의 소유가 풍부하여 함께 거주할 수 없음이러라 그들이 거주하는 땅이 그들의 가축으로 말미암아 그들을 용납할 수 없었더라 이에 에서
곧 에돔이 세일 산에 거주하니라 세일 산에 있는 에돔 족속의 조상 에서의 족보는 이러하고』
『에서 곧 에돔의 족보는 이러하니라(톨레도트)』에서는 야곱에게 발꿈치를 잡히고 태어났다. 발꿈치는 후손을 의미한다. 에돔은 아담에서 유래된 단어다. 붉은 흙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아담은 첫사람 인자를 상징한다. 인자를 따라 세상으로 들어오고 인자를 따라 하나님 나라로 돌아가는 인자이시다.
에돔은 첫사람 인자와 함께 온 자를 의미하는 것이다. 톨레도트는 물질세계에 들어와 하나님의
의를 이루어 보겠다고 하는 자들이라는 의미다.
『에서가 가나안
여인 중 헷 족속 엘론의 딸 아다(바스맛)와 히위 족속 시브온의
딸인 아나의 딸 오홀리바마(유딧)를 자기 아내로 맞이하고
또 이스마엘의 딸 느바욧의 누이 바스맛(마할렛)을 맞이하였더니』원래
이름이 바스맛과 유딧이었다. 창세기 26장 34절에서『에서가 사십 세에 헷
족속 브에리의 딸 유딧과 헷 족속 엘론의 딸 바스맛을 아내로 맞이하였더니』아나(히위 족속)와 브에리(헷
족속)는 부부인 것이다. 창세기 36장에서는 아나(아내)로, 26장에서는 브리에(남편)로
표현되었다.
에서의 아내는
바스맛과 유딧이다. 바스맛은 세상에 와서 성전되려고 하는 자, 유딧은
물질세계에서 성전되려고 하는 자, 즉 하나님에 의한 성전이 아니라, 사람에
의해서 높아지려는 자를 의미한다. 바벨탑을 짓는 자, 율법을
통해서 하나님의 의를 이루어보려는 자들인 것이다. 에서는 이런 사람들과 혼인하여 하나가 되므로, 그와 같은 존재라는 것이다. 에서의 아내가 한명 더 있다. 이스마엘의 딸 느바욧의 누이 바스맛(마할렛)이다. 마할렛 대신 바스맛으로 바꾼 것이다.
『아다는 엘리바스를
에서에게 낳았고 바스맛(마할렛)은 르우엘을 낳았고 오홀리바마는
여우스와 얄람과 고라를 낳았으니 이들은 에서의 아들들이요 가나안 땅에서 그에게 태어난 자들이더라』에서의 아들들이다. 엘리바스(엘과 파즈라는 합성어)는
제련된 금이라는 의미로서, 불로 연단된 말씀이라는 의미다. 르우엘은
이 세상에서 의를 이루려고 하다가 결국 안식으로 가는 자, 그리고 여우스, 얄람, 고라가 있다. 이
다섯은 가나안 땅에서 태어난 자라고 했다.
가나안이라는
이름을 통해서 살펴보면, 아람 나하라임의 라반으로부터 빼앗은 것이 야곱에게로 갔으며, 그리고 야곱에게로 간 것이 다시 에서에게로 가는 것이다. 하나님은
에서에게로 간 모든 것이 야곱에게로 갈 것을 예고 하는 것이다. 가나안(카프)은 분리되는 말씀으로 은혜를 찼다가 다시 분리되는 말씀으로 은혜를
얻는 땅을 의미한다. 안식 안에서 아버지와 아들 안에서 하나가 되어 사는 땅을 의미한다.
『에서가 자기
아내들과 자기 자녀들과 자기 집의 모든 사람과 자기의 가축과 자기의 모든 짐승과 자기가 가나안 땅에서 모은 모든 재물을 이끌고 그의 동생 야곱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갔으니』여기에서 모든(아세르) 이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아세르는 말씀으로 분리되어진 것이다. 모든 사람, 모든 가축, 모든 재물들이 아세르라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의 문을 통해서 분리되어 나온 것들이 말씀과 성령에 의해 삼켜져야 하는 자들인 것이다. 에서는 가나안에서 이 모든 것을 얻었으나, 야곱을 떠나 다른 것으로
가버렸다.
표면적으로는
에서와 야곱이 화해를 하고 에서가 야곱으로부터 많은 선물을 받아서 재물이 많아지므로, 야곱에게 양보해서
다른 것으로 간 것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이면적으로는 빛과 어둠이 대면하면, 어둠이 사라져야 하는 그런 이치다. 하나님과 죄인은 서로 대면할
수 없는 것이다. 야곱과 에서가 함께 거주한다는 것이 이런 의미를 갖는다.
서로 대면하는
것에 대한 예가 몇군데 있다. 창세기 16장 12절에서『그가 사람 중에 들나귀
같이 되리니 그의 손이 모든 사람을 치겠고 모든 사람의 손이 그를 칠지며 그가 모든 형제와 대항해서 살리라 하니라』그리고 창세기 25장 18절에서『그 자손들은 하윌라에서부터 앗수르로 통하는 애굽 앞 술까지 이르러 그 모든 형제의 맞은편에 거주하였더라』창세기 2장 18절에서는『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창세기 16장 12절에서는 형제와 대항하여, 25장 18절에서는 형제 맞은 편에. 그리고 2장 18절에서는
돕는 베필로 표현되었다. 대면한다는 것은 서로 분리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와 그의 지체들이 서로 분리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서로
대면이 아니라 하나가 되어야만 한다. 아담이 하와와 하나가 되는 것은 아들이 부모를 떠나 아내와 하나가
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리스도와 하나님을 떠난 그의 지체들이 하나가 되어 다시 하나님 나라로 돌아가야만
되는 것이다.
『두 사람의
소유(하야)가 풍부하여 함께 거주할 수 없음이러라 그들이
거주하는 땅이 그들의 가축으로 말미암아 그들을 용납할 수 없었더라』야곱이 가지고 있는 『하야』와 에서가 가지고 있는 『하야』가 다른 것이다. 에서가 소유하는 하야는 첫사람 아담(율법), 야곱이 소유하는 하야는 마지막 아담(복음)인 것이다. 율법과 복음은 함께 할 수 없는 것이다. 야곱은 먼저되는 자, 에서는 나증 될 자를 상징한다. 분리되는 의미가 마태복음 10장 34-35절에서
잘 표현되어 있다.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그들이 거주하는
땅이 그들의 가축으로 말미암아 그들을 용납할 수 없었더라 이에 에서 곧 에돔이 세일 산에 거주하니라 세일 산에 있는 에돔 족속의 조상 에서의 족보는
이러하고』세일은 사이르에서 유래된 것으로 털이 많은 의미다. 털은 몸에서 스스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사람의 털은 몸을 전체 가릴 수 있는 옷이 되지 못한다. 털은 자기의
의의 옷인 것이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한 후에 그들은 무화과 나무의 잎으로 몸을 가리었다. 무화과 나무의 잎은 자기의 의를 상징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가죽
옷을 입히셨다. 가죽은 살을 의미하며, 영이 가죽이라는 살에
들어가 사람이 되었으며, 장차 희생 양이신 그리스도로 인해서 온전한 의의 옷을 입게 될 것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세일 산에서 산은 신이 있는 곳을 의미한다. 에서는
그들 스스로 만든 신이 있는 산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있는 산이 야곱이 있는 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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