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40장 1-11절

 

술 맡은 관원장의 꿈과 요셉의 해석

 

(창세기 40 1-11)『그 후에 애굽 왕의 술 맡은 자와 떡 굽는 자가 그들의 주인 애굽 왕에게 범죄한지라 바로가 그 두 관원장 곧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에게 노하여 그들을 친위대장의 집 안에 있는 옥에 가두니 곧 요셉이 갇힌 곳이라 친위대장이 요셉에게 그들을 수종들게 하매 요셉이 그들을 섬겼더라 그들이 갇힌 지 여러 날이라 옥에 갇힌 애굽 왕의 술 맡은 자와 떡 굽는 자 두 사람이 하룻밤에 꿈을 꾸니 각기 그 내용이 다르더라 아침에 요셉이 들어가 보니 그들에게 근심의 빛이 있는지라 요셉이 그 주인의 집에 자기와 함께 갇힌 바로의 신하들에게 묻되 어찌하여 오늘 당신들의 얼굴에 근심의 빛이 있나이까 그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꿈을 꾸었으나 이를 해석할 자가 없도다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해석은 하나님께 있지 아니하니이까 청하건대 내게 이르소서 술 맡은 관원장이 그의 꿈을 요셉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꿈에 보니 내 앞에 포도나무가 있는데 그 나무에 세 가지가 있고 싹이 나서 꽃이 피고 포도송이가 익었고 내 손에 바로의 잔이 있기로 내가 포도를 따서 그 즙을 바로의 잔에 짜서 그 잔을 바로의 손에 드렸노라』

 

『그 후에(다바르) 애굽(마쯔라임) (멜라크)의 술 맡은 자와 떡 굽는 자가 그들의 주인 애굽 왕에게 범죄한지라(하타)』다바르는 문(성전)으로부터 나와 분리되는 일을 의미한다. 즉 세상에 나와서 라는 것이다. 마쯔라임은 세상을 상징하고, 하타는 빗나가다, 잘못 나갔다라는 의미다. 술 맡은 자와 떡 굽는 자가 사탄이 지배하는 율법에 대해서 잘못된 것을 의미한다.

『바로가 그 두 관원장 곧 술 맡은 관원장(마쉬케)과 떡 굽는 관원장(아파)에게 노하여(카차프) 그들을 친위대장의 집 안에 있는 옥에 가두니 곧 요셉이 갇힌 곳이라』감옥에 갇힌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에게 요셉이 함께 있다는 것은 어둠에서 빛을 비춰주는 것이다. 마쉬케는 말씀이 성령으로 나타나는 술(포도주)을 관리하는 자인데, 옥에 갇혔다는 것은 성령으로 나타나는 술의 의미를 모르는 것이다. 『아파』는 하나님의 입으로 삼켜져야 하는 떡을 굽는 자라는 의미다. 그들이 감옥에 갔다는 것은 술과 떡의 의미를 모르는 자를 의미한다. 요셉(그리스도)이 빛을 비춰주므로 술과 떡의 의미를 깨닫게 된다.

두 관원장은 약속의 씨가 없는 자들이다. 첫사람 아담을 따라 온 모든 사람들은 약속의 씨가 없다. 여전히 세상에서 분리되는 말씀(율법)을 따르는 자들인 것이다. 오직 약속의 씨는 그리스도이시다. 카차프라는 말은 갈라지다라는 의미를 갖는다. 말씀이 이루어져서 성령으로 삼켜지는 자와 삼켜지지 않는 자로 나누어진다는 것이다. 옥은 요셉이 갇혀있는 동일한 곳이다. 즉 감옥(마콤)은 세상에 갇혀있는 것을 의미한다. 세상에서 갇힌 자(율법을 지키는 자)는 레헴과 후의 먹을 것(떡과 포도주)의 의미를 알지 못한다. 그 의미를 깨닫는 자는 율법에 대해서 죽는 자다.

『친위대장이 요셉에게 그들을 수종들게 하매 요셉이 그들을 섬겼더라』요셉이 그들을 보살피는 것이다.『그들이 갇힌 지 여러 날이라 옥에 갇힌 애굽 왕의 술 맡은 자와 떡 굽는 자 두 사람이 하룻밤에 꿈을 꾸니 각기 그 내용이 다르더라 아침에(보케르) 요셉이 들어가 보니 그들에게 근심의 빛이 있는지라』꿈의 내용이 다르다고 되어 있는데, 그 의미는 하나인 것이다. 아담과 하와는 서로 다른 존재이기는 하지만 원래 하나라는 의미다. 보케르는 하나님께서 빛과 어둠을 나누시고, (아침)이 시작될 때다. 보케르는 빛이신 그리스도(요셉)가 오시는 때를 상징한다. 예수님은 유대인들에게 빛으로 나오라고 하는데, 나오지 못하는 것이다.

『요셉이 그 주인의 집에 자기와 함께 갇힌 바로의 신하들에게 묻되 어찌하여 오늘 당신들의 얼굴에 근심의 빛이 있나이까』그들에게 근심의 빛이 있는 것은 요한복음 1 5절에서『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와 같은 것이다. 하나님이 직접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왔는데, 세상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모른다는 것이다.

『그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의 계시)을 꾸었으나 이를 해석할 자가 없도다』하나님의 계시는 그리스도이시다. 그러나 사람들은 계시의 의미를 알지 못한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낮이 아니라 밤인 것이다.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해석(파타르) 하나님께 있지 아니하니이까 청하건대 내게 이르소서』파타르는 울타리 안(세상)에 삼십을 내고 들어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이룬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그 의미를 알지 못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해석은 곧 요셉이 꿈을 해석하는 것이다. 파타르는 피트론에서 유래되었으며, 피트론은 하나님의 입으로 사백세겔을 삼키셔서 분리되어지는 말씀으로 세상에 나타난 자를 상징한다. 피트론은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하나님의 해석(요셉)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는 것이다.

『술 맡은 관원장이 그의 꿈을 요셉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꿈에 보니 내 앞에 포도나무가 있는데』포도나무는 요한복음 15 1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나는 참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그 나무에 세 가지가 있고』세 가지는 삼일()의 때(세 때)를 의미한다. 세 때는 아버지와 아들과 성도가 하나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싹이 나서 꽃이 피고 포도송이가 익었고(바샤르)』바샤르는 물이나 젖에 삶아져서 고기가 익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성령의 감동으로 성취되는 것이다. 성취가 되는 것은 성도가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것이다.

『내 손에 바로의 잔(코스: 헬라어로는 포테리온)이 있기로 내가 포도를 따서 그 즙을 바로의 잔에 짜서(샤하트) 그 잔을 바로의 손에 드렸노라』바로(사탄)가 포도즙을 먹는다는 것은 율법 안에 인자의 살과 피가 있다는 것이다. 바로가 포도즙을 마신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값을 상징하는 것이다. 코스는 세상에 율법을 이루기 위하여 온 자들이다. 바로가 마시는 잔은 피값으로 사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이지만, 예수 그리스도가 마시는 잔은 이것을 이루는 잔이며, 성도가 마시는 잔은 말씀을 이루는 잔이 되는 것이다.

시편 23 5절에서『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모든 자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로 돌아간다는 의미를 갖는다.

포테리온은 마태복음 26 26-28절에서 잘 표현되고 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예수님의 살은 떡으로, 피는 잔으로 표현했다. 즉 살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 잔은 그의 흘리는 피를 의미한다. 그 살을 먹고 피를 마시는 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연합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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