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41장 14-30절

 

하나님의 하실 일을 바로에게 보이심이라

 

(창세기 41 14-30)이에 바로가 사람을 보내어 요셉을 부르매 그들이 급히 그를 옥에서 내 놓은지라 . . . . .   애굽 땅에 일곱 해 큰 풍년이 있겠고 후에 일곱 해 흉년이 들므로 애굽 땅에 있던 풍년을 다 잊어버리게 되고 이 땅이 그 기근으로 망하리니』

『이에 바로가 사람을 보내어 요셉을 부르매』바로가 꿈을 꾸었지만 무슨 뜻인지를 모르므로 요셉을 불렀다. 사탄은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사탄 아래 있는 자들도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참 의미를 모른다 라는 것이다. 이사야 6 9절에서『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요한복음 8 44절에서 예수님이 유대인들에게 너희들은 마귀에게서 났고, 거짓말쟁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들이 급히 그를 옥(보르)에서 내 놓은지라 요셉이 곧 수염을 깎고』옥은 빈 우물(구덩이)이다. 이것은 말씀이 없는 율법을 의미하는 것이다. 율법 안에 던져진 요셉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수염()을 깎는 것은 양털을 깎는 것인데, 율법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게 하는 것이다. 『그의 옷을 갈아 입고 바로에게 들어가니』요셉(그리스도)이 진리의 옷(말씀:의의 옷)으로 바로(사탄)에게 나아갔다.『바로가 요셉에게 이르되 내가 한 꿈을 꾸었으나 그것을 해석하는 자가 없더니 들은즉 너는 꿈을 들으면 능히 푼다 하더라』율법이 진리에게 묻는 것은 마귀의 자식들이 하나님께 묻는 것이다. 바로(사탄)는 꿈에 대해서 정확한 해석을 할 수 없다.

『요셉이 바로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바로에게 편안한 대답을 하시리이다』편안한 답은 샬롬(평화)이라는 답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샬렘왕이며, 평화의 왕이라는 의미다. 하나님과 하나님을 떠난 자들의 사이에 평화를 의미한다. 하나님이 하나님을 떠난 자들에게 『하야 아세르 하야』를 주실 것이라는 것이다.

『바로가 요셉에게 이르되(다바르)』다바르는 문(하늘의 문) 으로 부터 나오고 들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사탄이 다바르에 대해서 묻고 있는 것이다. 『내가 꿈에 나일 강 가(싸파)에 서서 보니 살지고 아름다운 일곱 암소가 나일 강 가에 올라와 갈밭에서 뜯어먹고』나일 강은 궁창 아래의 물(율법)을 상징한다. 싸파는 언어(말씀)인데, 하나님이 주신 율법이라는 말씀 위에 서있는 것이다. 사탄이 율법 위에 서서 바라보는 것이다. 살지고 아름다운 일곱 암소는 하나님이 삼키시기에 아름다운 것이 위로 올라왔다는 것이다. 갈밭은 갈대를 의미한다. 갈대를 뜯어먹는 것은 친구가 되는 것이다. 나일강에서 뜯어 먹고 마쯔라임에 있는 친구가 되었다는 의미이다. 즉 이 땅에서 크게 생육하고 번성하며 땅에 충만했다는 것이다.

『그 뒤에 또 약하고 심히 흉하고 파리한 일곱 암소가 올라오니 그같이 흉한 것들은 애굽 땅에서 내가 아직 보지 못한 것이라』히브리어로 『파리한 모든 일곱(헨나)』암소에서 우리말 번역에서는 헨나를 번역하지 않았다. 헨나는『~ 안에』라는 의미다. 헨나는 헨의 연장된 말로서, 후의 복수()격의 여성형이다. 헴은 남성형, 헨은 여성형이다. 헨은 남자와 하나가 되어야 할 여자라는 것이다. 헨나는 후와 하나가 되어야 할 자 안에 라는 의미이다. 하나가 되어야 할 자가 바로 애굽 안에서 볼 수 없었던 흉악한 소라는 것이다. 애굽 땅안에 있는 자들 중에서 흉악한 자라는 것이다.

『그 파리하고 흉한 소가 처음의 일곱 살진 소를 먹었으며 먹었으나 먹은 듯 하지 아니하고 여전히(테힐라) 흉하더라』원어 히브리어로는『들어갔으나 들어간듯 하지 않아서』라고 되어있다. 들어간다는 것은 하나가 되어 들어가는 것이다. 하나(야다)가 되었으나, 하나가 되지 못한 것이다. 형식적으로는 야다했으나, 실제로는 야다하지 못한 것이다. 테힐라는 처음이라는 의미다. 테힐라는 할랄에서 유래되었다. 할랄는『땅에 심다, 더럽히다』라는 의미를 가진 단어다. 더럽히는 것은 자기들의 하나님을 찾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보시기에 더렵혀지는 것이다.

『내가 곧 깨었다가 다시 꿈에 보니 한 줄기에 무성하고 충실한 일곱 이삭이 나오고 그 후에 또 가늘고 동풍(카딤)에 마른 일곱 이삭이 나더니 그 가는 이삭이 좋은 일곱 이삭을 삼키더라(발라)』한 줄기는 갈대 즉 애굽(마쯔라임)을 의미한다. 그곳으로부터 일곱 이삭(충실한 이삭:풍년)이 올라오는 것이다. 카딤은 케뎀(동쪽)에서 유래되었는데, 동쪽은 창세기 1 3절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빛이 세상에 비춰진 태초 그곳을 의미한다. 마른 일곱 이삭은 처음을 더럽히는 이삭이다. 발라는 라는 말은 하나님과 아버지와 성도가 하나되는 말씀으로 안식 안에 있는 것을 의미한다. 즉 하나님이 삼켜버리는 자들인 것이다.

『내가 그 꿈을 점술가(하루톰)에게 말하였으나』꿈은 율법 가운데서 바라보는 것이다. 울타리 안에서 분리된 뱀으로서, 율법의 말씀을 해석하는 자들이다. 즉 스스로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고, 하나님처럼 행하는 자들인 것이다. 점술가나 이스라엘의 율법학자들은 다 같은 자들이다. 『그것을 내게 풀이해 주는 자가 없느니라』사탄에 속한 자들은 하나님이 주시는 뜻을 풀 수 있는 자가 없다.

『요셉이 바로에게 아뢰되 바로의 꿈은 하나라』살찐 소와 마른 소(칠년), 살진 이삭과 마른 이삭(칠년)의 꿈이 각각이지만 하나라는 것이다. 그 하나되는 꿈의 내용은 하나님이 바로에게 알려주시는 것이다. 『하나님(엘로힘:하야)이 그가 하실 일(하야 아세르 하야) 바로에게 보이심이니이다』 하나님이 하시는 것은 하야 아세르 하야를 만드는 일이다. 첫사람 아담과 마지막 아담이 하시는 일을 보여주는 것이 꿈의 내용이라는 것이다. 첫사람 안에서 오고 마지막 아담 안에서 가는 것이 하나라는 것이다. 율법과 복음은 두개가 아니라 하나라는 의미다. 율법은 첫사람 아담 안에서 오는 것이고, 복음은 마지막 아담 안에서 돌아가는 것이다.

『일곱 좋은 암소(헨나)는 일곱 해요 일곱 좋은 이삭도 일곱 해니 그 꿈은 하나라』즉 이 말도 첫사람 아담 안에서 오고 마지막 아담 안에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그 후에 올라온 파리하고 흉한 일곱 소는 칠 년이요』파리하고 흉악한 소는 율법에 의해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는 자들을 의미한다.『동풍에 말라 속이 빈 일곱 이삭도 일곱 해 흉년이니』속이 빈 것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실 때 땅이 공허하다라는 말과 같은 것이다. 풍년과 흉년은 영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가 아닌가 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자는 풍년이 되고 그렇지 못한 자는 흉년이 된다. 모든 사람에게 이러한 과정은 있게 마련이다.

『내() 바로에게 이르기를 하나님이 그가 하실 일(다바르) 바로에게 보이신다 함이 이것이라』후는 하나님(그리스도)을 의미한다. 다바르는 말씀으로 분리되고 일인 것이다. 하나님 나라로부터 분리되고, 그 다음에 세상으로부터 분리되는 것이다. 『온 애굽 땅에 일곱 해 큰 풍년이 있겠고 후에 일곱 해 흉년이 들므로 애굽 땅에 있던 풍년을 다 잊어버리게 되고(샤카흐) 이 땅이 그 기근으로 망하리니』풍년은 하나님 나라로부터 이 땅에 온 자들이 영적으로 깨닫고 하나님 나라로 돌아가지만, 그렇지 못한 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수없이 들었지만 깨닫지 못하고 그 마음이 황폐해지는 것이다. 샤카흐는 인간들이 하나님 나라로부터 온 것을 잊어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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