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42장 16-25절
너희는 이같이 하여
생명을 보전하라
(창세기 42장 16-25절)『너희 중 하나를 보내어 너희 아우를 데려오게 하고 너희는 갇히어 있으라 내가 너희의 말을 시험하여 너희 중에 진실이 있는지 보리라 . . . . 요셉이 그들을 떠나가서 울고 다시 돌아와서 그들과 말하다가 그들 중에서 시므온을 끌어내어 그들의 눈 앞에서 결박하고
명하여 곡물을 그 그릇에 채우게 하고 각 사람의
돈은 그의 자루에 도로 넣게 하고 또 길 양식을 그들에게 주게 하니 그대로 행하였더라
『너희 중 하나를 보내어 너희 아우를 데려오게 하고 너희는 갇히어 있으라』아우를 데리고 오는 것은 아우와 하나가 되는 것이다. 『내가 너희의 말을 시험하여 너희 중에 진실이 있는지 보리라』 그렇게 하나가 되면 믿음(다바르)을 증명(바한)하라는 것이다. 그 믿음이란 열 형제는 여기에, 다른 한 형제는 죽었고, 또 다른 형제는 아버지와 함께 있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바로의 생명으로 맹세하노니 그리하지 아니하면 너희는 과연 정탐꾼이니라 하고 그들을 다 함께 삼 일을 가두었더라(미쉬마르)』바로는 빈잔을 의미하며,
포도주가 없는 율법을 의미한다. 율법은 흙집의 생명이다.
흙집의 생명이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되면, 벌거벗은 것을 찾으러 온 것이 맞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들은 모두 벌거벗은 것을 모르는 자가 된다는 것이다. 베냐민은
형제들에게 오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들이 오든지 안오든지 간에 세상에 대해서 죽게 된다. 베냐민은 비록 적은 수이지만 나타나게 되고, 야곱의 이십년이라는
세월을 통해서 마지막에는 남은 모든 자가 바닷가의 모래같이 많아지며, 다 베냐민이 된다는 것이다. 율법의 형제들은 아니라고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죽은 자가 되고, 베냐민은 그리스도로 인하여 구원을 얻는 세상에 오게 된 모든 자를 의미한다.
삼 일은 세 때를 의미한다. 칠년, 칠년, 사년을 의미한다. 미쉬마르는 멤 쉬마르(갇히다)는 말씀으로 가두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말씀의 감옥은 율법이다. 갇히다 라는 말은『모으다』라는 의미를 갖는다. 창세기 6장 21절에서『너는
먹을 모든 양식을 네게로 가져다가 저축하라 이것이 너와 그들의 먹을 것이 되리라』창세기 25장 8절과 창세기 25장 17절에서
열조에게 돌아갔다는 말은 모아졌다는 의미를 갖는다. 육신은 죽지만, 육신
속에 있는 영은 죽지 않고 모아지는 것이다. 모아지는 것은 세 때(야곱의 20년) 동안에 둘째 사망을 위하여 음부에 모아지는 것이다. 음부는 아브라함의 품과 부자가 가는 음부가 있다.
『사흘 만에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세 때 동안 하나님은 계속 이 같은 의미의 말을 전한다.『나는 하나님을 경외하노니 너희는 이같이 하여(아사) 생명을 보전하라』아사는 창조하다 이루라는 의미로서 이것을 성취하여
하야 하라는 것이다. 하야는 네퓌시하야(살아있는 생명)를 말할 때 그 하야(생명)다. 『너희가 확실한 자들이면 너희 형제 중 한 사람만 그 옥에 갇히게 하고』율법의 감옥 안에 갇혀있는 것이다.『너희는 곡식을 가지고 가서(쉐베르) 너희 집안의 굶주림을 구하고』굶주림의 집으로 들어가라는 것이다. 히브리어
원문에는 구하고 라는 의미는 없으며, 들어가는 것이다. 쉐베르는
샤바르(깨지다, 부서지다)에서
유래되었다. 곡식은 부서지고 깨지는 양식이다. 부서지고 깨지는
양식을 먹고 굶주리는 집에 들어가서 그들이 양식을 먹고, 부서지고 깨지라는 것이다. 그러면 헤벨(허무)이
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부서지고 깨져서 작은 형제(베냐민)안으로 들어가라는 것이다. 작은 이라는 의미는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즉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너희 막내 아우를 내게로 데리고 오라 그러면 너희 말이 진실함이 되고 너희가 죽지 아니하리라 하니 그들이 그대로 하니라(아멘)』너희들이 벌거벗은 것을 깨닫고, 깨지고 부서지는 양식을 먹고 허무함을
깨달아, 베냐민을 데리고 와(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면), 너희 말(하나님의 일), 즉
문으로 들어가고 나가는 일이 아멘(진실한 말)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세상으로 들어왔다가 다시 돌아가게 되어 영원히 살게되는
것이다.
『그들이 서로 말하되 우리가 아우의 일로 말미암아 범죄하였도다 그가 우리에게 애걸할 때에 그 마음의 괴로움을 보고도 듣지 아니하였으므로 이 괴로움이
우리에게 임하도다』그들이 서로 말하는 것은 하나님이 세상 사람들에게 마음으로 전하는 것이다. 요셉(그리스도)으로 말미암아 범죄함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자들이 그리스도의 고난을 보고도 듣지 않았다는 것이다. 인생들이
세상의 고통 가운데 있으면서 그 고통의 의미를 모른다는 것이다. 그래서 은혜를 모르는 것이다. 인생이 율법 속에 갇혀있는 것을 깨닫지 못하므로 은혜가 없는 것이다. 베냐민이
오는 것(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은 쉬운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르우벤이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그 아이(엘레:요셉)에 대하여 죄를 짓지 말라고 하지 아니하였더냐 그래도
너희가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러므로 그의 핏값을 치르게 되었도다 하니』르우벤은 야곱의 장자이지만, 이스라엘을
대표하며, 율법을 상징한다. 하나님이 핏값을 찾는 것이다. 하나님이 생명을 찾는 것은 영을 찾는 것을 의미한다. 창세기 9장 5-6절에서『내가 반드시 너희의 피 곧 너희의 생명의 피를 찾으리니 짐승이면 그 짐승에게서, 사람이나 사람의 형제면 그에게서 그의 생명을 찾으리라 다른 사람의 피를 흘리면 그 사람의 피도 흘릴 것이니 이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으셨음이니라』이는 대홍수 이후에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하신 말씀이다. 사람의 피와 하나님의 형상(영)과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 사람이 피를 흘리는 것은 사람(아담)의 다른 한편(하와)을 구원하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 그리스도가 피를 흘리면,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자를 구원하는 것이 된다.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마시게 되면, 하나님은 그의 생명(영)을 찾게 되는 것이다.
『그들 사이에 통역을 세웠으므로 그들(헴)은 요셉이 듣는 줄을 알지 못하였더라』헴은
후의 복수형으로 후와 하나가 되어야 하는 자들이다. 그러나 그들이 요셉(그리스도)과 하나가 되지 못한 것이다. 말하자면 이스라엘이 그렇다. 『요셉이 그들을 떠나가서 울고 다시
돌아와서』주변에(다바르) 위에서 울었던 것이다. 다바르는 하나님의 뜻 위에서 요셉(그리스도)이 눈물을 흘리는 것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떠난 자가 다시 돌아오기를
이렇게 애통의 눈물을 흘리는 것이다.
『그들과 말하다가 그들 중에서 시므온을 끌어내어 그들의 눈 앞에서 결박하고 명하여 곡물(바르)을 그 그릇에 채우게 하고』시므온을 결박하는 것은 율법 안에 갇혀있는 것을 의미한다. 그릇은 율법의 도구인 것이다. 바르는 곡식이 빻아져서 한 움큼의
가루가 되는 것이다. 율법을 통해서 한 움큼의 가루가 되어 불로 태워져서 하나님께 드려지는 것이다. 『각 사람의 돈은 그의 자루에 도로 넣게 하고 또 길 양식을 그들에게 주게 하니 그대로 행하였더라』돈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의미하며, 자루는 베옷이다. 말씀의 옷을 입는 것이다. 길 양식(체다)에서 길은
인생 길이다. 체다는 차이드(사냥하는)에서 나온 말이다. 사냥한 음식은 율법을 의미한다. 인생 길에서 율법을 통해서 자기의 의를 세우다가 생명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요셉은 형들(이스라엘)에게 율법을 통해서 깨지고
부숴져서 그리스도를 발견하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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