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43장 12-22절

 

누가 은을 푸대에 넣었는지 알지 못하니이다

 

(창세기 43 12-22)너희 손에 갑절의 돈을 가지고 너희 자루 아귀에 도로 넣어져 있던 그 돈을 다시 가지고 가라 혹 잘못이 있었을까 두렵도다  ……… 각 사람의 돈이 전액 그대로 자루 아귀에 있기로 우리가 도로 가져왔고 양식 살 다른 돈도 우리가 가지고 내려왔나이다 우리의 돈을 우리 자루에 넣은 자는 누구인지 우리가 알지 못하나이다』

『너희 손에 갑절(미쉬네)의 돈을 가지고 너희 자루 아귀에 도로 넣어져 있던 그 돈을 다시 가지고 가라』 갑절의 돈은 가져온 돈 만큼 가지고 내려간다는 것이다. 미쉬네는 반복하다라는 단어에서 유래되었다. 돈은 율법을 의미한다. 보내준 율법을 반복한다는 것이다. 받은 율법에 대해서 하나님의 공의를 나타내는 것이다. 율법을 반복하는 것은 다 이루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율법 속의 복음이 있음을 나타낸다. 율법은 옛것, 복음은 새것이다. 하나님이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새것(복음)을 주는데, 그들은 하늘의 복(복음)을 알지 못했다.

『혹 잘못(미쉬게)이 있었을까 두렵도다』미쉬게는 맴(말씀)과 샤가(빗나가다)의 합성어다. 히브리어 원어에는『두렵도다』라는 말은 없으며,『미쉬게 후』로 되어있다. 후는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요셉이 말한 부분(율법)과 너희들(야곱의 아들들)이 말한 부분이 다르다는 것이다. 즉 야곱이 말하는 것이 맞다(복음)는 것이다.

『네 아우(베냐민)도 데리고 떠나 다시 그 사람에게로 가라』번역상데리고 가는 것은 취한다는 것이고, 하나가 되는 의미다. 형들에게 아우와 하나가 되라고 말한 것이다. 즉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서 하나가 되라는 것이다. 그 사람(이쉬:요셉)에게로 가라는 것은 사망가운데, 생명으로 가라는 것이다. 이쉬는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전능하신 하나님(엘 샤다이)께서 그 사람(이쉬) 앞에서(빠님) 너희에게 은혜(라함)를 베푸사(나탄)』 엘 샤다이는 세상에 오신 하나님이 아닌 보좌의 하나님을 의미한다. 빠님은 면전이라는 의미다. 야곱이 하나님의 얼굴을 보았다(빠님) 라는 의미에서 이해될 수 있다. 요셉의 얼굴 앞에 있는 자들은 형제들(네게드)이다. 네게드는 다른 한편이다. 이쉬(그리스도)가 가서 도움을 받아야 하는 다른 한편(베필)에게 은혜(라함)를 베푼다. 라함은『태아를 품고있는』이라는 의미다. 창세 전부터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자비를 준다(나탄)는 것이다.

『그 사람으로 너희 다른 형제와 베냐민을 돌려보내게(샬라흐) 하시기를 원하노라』샬라흐는 내 보낸다는 의미다. 하나님의 집으로부터 이 땅으로 와서, 그리스도(요셉)로 인해서 다시 이 땅(마쯔라임:애굽)의 사망 가운데서 하나님 나라로 내 보내지는 것이다. 베냐민과 하나가 되는 다른 형제들이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서 하나님 나라로 가는 것이다.

『내가 자식을 잃게 되면 잃으리로다』하나님이 하나님 나라에서 아들들을 잃었다. 그들이 하나님처럼 되고 싶어서 하나님을 떠나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세상에서 육신으로 와서 다시 세상에서 그들을 하나님 나라로 돌려보내는 것이다. 잃는 것을 반복하는 것이다. 『그 형제들(에노쉬)이 예물(민하)을 마련하고 갑절의 돈을 자기들의 손에 가지고 베냐민을 데리고 애굽에 내려가서 요셉 앞에 서니라(아마드)』에노쉬는 열명의 형제들이다. 이 세상의 천하만민을 의미한다. 민하는 하나님께 드려지는 제사의 예물이다. 예물을 마련하는 것은 예물이 되는 것이다. 갑절의 돈은 율법 속에서 나타나는 복음의 말씀이다. 베냐민은 그리스도 안이다.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서 일어나 그리스도 앞에 서게 된다. 아마드는 안식의 말씀을 끝내는 사람이 문에 서 있는 것이다.

『요셉은 베냐민이 그들과 함께 있음을 보고』그리스도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를 본다는 것이다. 대면하여 하나가 되는 것이다. 베냐민이 그들과 함께 있는 것은 세상에 있는 자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있는 것을 보는 것이다. 『자기의 청지기에게 이르되 이 사람들을 집으로 인도해 들이고』청지기는 집 위의 아세르다. 요셉의 집은 성전을 의미한다. 아세르는 하나님 나라를 들어가는 문을 의미하는 것이다. 문의 청지기는 그리스도이시다. 하나님이 그리스도에게 말하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을 하늘의 잔치에 참여하게 하는 것이다. 성전에 들어가면 진설병(생명의 떡)을 먹는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먹는 것이다.

『짐승(테바흐)을 잡고(타바흐:베아흐와 같은 개념) 준비하라() 이 사람들이 정오(쵸하르)에 나와 함께 먹을 것이니라』제단(이즈베아흐)은 베아흐(죽이다)라는 말과 이즈(말씀)가 합성된 단어다. 말씀에 의해서 죽이는 제단이다. 베아흐의 글자 안에 있는 의미는 칠(자임)의 안식을 위해서 온 성전이라는 의미다. 이게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가 되는 것이다. 세상에 율법을 지키려고 온 자들이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제단에서 죽어야 한다. 죽음을 위해 세워지는 것이다. 세워지는 것()이 준비되는 것이다. 사람들(에노쉬)이 함께 먹는 것은 그리스도의 살을 먹는 것이다. 제단에서 함께 죽는 것을 의미한다. 쵸하르는 빛을 의미한다. 쵸하르는 차하르(기름을 짜다)에서 어근을 찾을 수 있다. 성령에 의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나타나면, 에노쉬들이 빛이 되는 것이다. 율법에서 성령의 능력으로 복음의 열매를 맺게되면 그것이 그리스도의 생명이 되는 것이다.

『청지기가 요셉의 명대로 하여 그 사람들을 요셉의 집으로 인도하니 그 사람들이 요셉의 집으로 인도되매 두려워하여(야레)』창세기 3장에서 아담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여(야레) 나무 뒤에 숨었다 라고 하는데, 같은 말이다. 그들이 성전으로 들어갔는데 왜 두려운가? 그것은 아직 하나가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교회 안에 들어왔지만, 하나님과 하나가 되지 못하는 자는 하나님이 여전히 두려운 것이다.

 『이르되 전번에 우리 자루에 들어 있던 돈의 일로 우리가 끌려드는도다 이는 우리를 억류하고 달려들어 우리를 잡아 노예로 삼고 우리의 나귀를 빼앗으려 함이로다 하고』신도는 말씀으로 인하여 그리스도의 노예가 되며, 세상에 대해서 잃게 된다. 또한 그게 두려운 것이다. 아직은 하나님과 하나가 되지 못하므로 두려운 것이다.

『그들이 요셉의 집 청지기에게 가까이 나아가 그 집 문 앞에서 그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 주여 우리가 전번(테힐라)에 내려와서 양식을 사가지고(샤바르)』테힐라는 할랄으로부터 온 단어다. 창세기 4 26절에서 그 때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할랄)라고 말한다. 할랄은 더럽게 부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는 것이다. 전에 율법을 받았을 때, 즉 전에 자루에 돈(율법)을 넣은 것을 발견했는데, 누가 넣었는지 모른다라고 말한 것이다. 양식은 깨어지는 말씀이다.

『여관(말론)에 이르러 자루를 풀어본즉 각 사람의 돈이 전액 그대로 자루 아귀에 있기로 우리가 도로 가져왔고 양식 살 다른 돈도 우리가 가지고 내려왔나이다 우리의 돈을 우리 자루에 넣은 자는 누구인지 우리가 알지 못하나이다』말론은 말씀 안에서 밤을 지내려고 한다는 것이다. 요셉이 준 것인데, 그것을 형제들이 다시 가져온 것이다. 달란트 비유에서 한 달란트 받은 자가 땅에 묻었다는 것이다. 야곱은 미쉬네(율법이 이루어지는 공의)라고 주었는데, 형제들은 요셉에게 미쉬칼(말씀의 무게를 달다는 의미)이라고 말했다. 대부분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전히 율법 안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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