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43장 23-29절
하나님이 네게 은혜베푸시기를
원하노라
(창세기 43장 23-29절)『그가 이르되 너희는 안심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 하나님, 너희 아버지의 하나님이 재물을 너희 자루에 넣어 너희에게
주신 것이니라 너희 돈은 내가 이미 받았느니라 하고 시므온을 그들에게로 이끌어내고 그들을 요셉의 집으로 인도하고 물을 주어 발을 씻게 하며 그들의 나귀에게
먹이를 주더라 그들이 거기서 음식을 먹겠다 함을 들었으므로 예물을 정돈하고 요셉이 정오에 오기를 기다리더니 요셉이
집으로 오매 그들이 집으로 들어가서 예물을 그에게 드리고 땅에 엎드려 절하니 요셉이 그들의 안부를 물으며 이르되 너희 아버지 너희가 말하던 그 노인이 안녕하시냐 아직도
생존해 계시느냐 그들이 대답하되 주의 종 우리 아버지가 평안하고 지금까지 생존하였나이다 하고 머리 숙여 절하더라 요셉이 눈을 들어 자기 어머니의 아들 자기 동생 베냐민을 보고
이르되 너희가 내게 말하던 너희 작은 동생이 이 아이냐 그가 또 이르되 소자여 하나님이 네게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노라』
『그가 이르되 너희는 안심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 하나님, 너희 아버지의 하나님이 재물(마트문)을 너희 자루(암타하트)에 넣어 너희에게 주신 것이니라 너희 돈은 내가 이미 받았느니라 하고.』형제들이
두려워했다. 그들이 그리스도(요셉) 안에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출애굽한 백성들이 시내산에서 하나님을
두려워했다. 모세가 백성들에게 두려워 말라고 말했다.
마트문은 숨겨진 비밀을 의미한다. 비밀은 복음이다. 야곱은 하나님을 의미하는데, 하나님이 복음을 보냈다는 것이다. 율법 속에 복음이 있다. 자루(율법) 안에 재물(복음)이 들어있는 것이다. 마트문은
마(세상) 타만(숨기다)에서 온 단어다. 세상에 숨겨진 말씀의 비밀이 되는 것이다. 성령이 함께 하시지 않으면 깨달을 수 없는 말씀이 된다.
예수 그리스도를 앞에 두고도 모르는 이스라엘과 같은 자들이다. 야곱은 예물을 주었으나, 그들은 무게를 달아서 가져왔다고 한다. 미쉬네로 말미암은 예물이었지만, 아들들은 한 달란트의 비유처럼 받은
것을 땅에 묻었다가 그대로 주인에게 돌려주는 모습이다. 암타하트에는 율법도 있고, 율법을 이룬 미쉬네도 있고, 미쉬네로 말미암은 예물도 함께 들어있어서
반드시 베냐민이 나와야 하는 그런 성전, 즉 하나님의 보고가 되는 것이다.
『시므온을 그들에게로 이끌어내고(야차) 그들을 요셉의 집으로 인도하고 물을 주어 발(레겔)을 씻게 하며(라하츠) 그들의
나귀에게 먹이(마스포)를 주더라』야차는 방주에서 나오는 등의
갇힌 상태에서 나오는 것을 의미한다. 요셉의 집은 성전이다. 요셉의
집으로 인도하는 자는 청지기다. 요셉의 집에서 모든 열두 형제가 다 모이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 모든 영적 이스라엘이 베냐민(그리스도
안에 있는)자가 되는 것이다.
창세기 18장에서도
아브라함이 발을 씻을 물을 가져오게 했다. 여호와 하나님의 발은 세상에 있는 자기의 지체들이다. 하나님을 떠난 자들을 씻어주는 것이다. 레겔이라는 단어가 라칼(정탐하다)라는 단어에서 유래되었는데,
발은 정탐하는 발이 된다. 발을 씻으므로 정탐하는 것을 그만하는 것이다. 정탐하는 것은 율법을 지켜서 자기의 의를 드러내는 것인데, 그것을
그만하는 것이다.
마스포는 짐승들이 먹는 사료(양식의 말씀)다. 나귀는 멍에(율법)를 지고 다니는 자를 의미하는데,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주시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은혜로 구원받는 것이다. 나귀는 세상에
있는 모든 피조물들이 되는 것이다. 로마서 8장 21절에서『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 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그들이 거기서 음식을 먹겠다 함을 들었으므로 예물을 정돈하고(쿤) 요셉이 정오에 오기를 기다리더니』작은 예물은 유향과 꿀과 향품과 몰약과 비자, 파단행인데, 쿤 한다는 것은 나를 쳐서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는 것이다. 정오는 초하루(빛)라는
의미다. 차하르에서 유래되었다. 차하르는 기름을 짜다라는
의미이다. 하나님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말씀이 역사되어서 빛(생명)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빛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정오인 빛(요셉:그리스도)이 와서 요셉과 형제들이 함께 식사를 하게 된다. 그들은 하나가 되는
것이다. 요한복음 1장 9절에서처럼
빛이 세상에 와서 사람들에게 비추는 것이다. 빛(그리스도)이 오지 않으면 하나님과 하나가 되지 않는 것이다. 그리스도와 함께
식사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어둠을 사랑하는 자들이다.
『요셉이 집으로 오매 그들이 집으로 들어가서 예물을 그에게 드리고 땅에 엎드려 절하니』빛이 오신 것을 깨닫고 예물을 드리는 자들은 바로 하나님께 자기를 드리는
것이다. 예물은 자기를 드리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는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자들은 하나님을 만나게 된다. 엎드려 절하는 것은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이다. 예배하는 것은 경배대상인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것이다.
『요셉이 그들의 안부를 물으며 이르되 너희 아버지 너희가 말하던 그 노인이 안녕하시냐
아직도 생존해 계시느냐』너희 아버지이신 하나님은 살아계신 자의 하나님인가 라는 것이다. 살아있는 것은
빛이 오시면 하나님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죽은 자들은 하나님을 모른다. 요셉이 묻는 것은 내 아버지가 너희 아버지도 되는가 라는 것이다. 아버지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영원하시며, 그 안에
있는 자도 영생을 누리게 된다.
『그들이 대답하되 주의 종 우리 아버지가 평안하고 지금까지 생존하였나이다 하고 머리 숙여(카다드) 절하더라』그들이 대답하되, 하나님이 바로 우리의 하나님이라고 말한다. 즉 대답하는 형제들도 영생을 가진 자들이며, 그들의 하나님이 바로
살아계신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생명의 떡(그리스도)을 먹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자들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는
것이다. 카다드는 말씀이 이루어져서 문 앞에 서게 되는 것이다. 카다드는
머리를 두번 숙이는 의미를 갖는다. 머리를 숙이고(한번), 엎드려 절하는 것(두번)이다. 두번 숙이는 것은 먼저 되는 자와 나중 되는 자, 큰 자와 작은
자를 상징한다.
『요셉이 눈을 들어(나아) 자기 어머니(맴)의 아들
자기 동생 베냐민을 보고 이르되 너희가 내게
말하던 너희 작은 동생이 이 아이냐 그가 또 이르되 소자여 하나님이 네게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노라』나아는
하나님의 눈 높이로 들어서 하나님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맴은 율법을 의미한다. 요셉이 율법의 아들 형제 베냐민이라고 말한다. 요셉이 하늘의 눈으로
베냐민을 바라보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을 바라보는 것이다. 요셉이 형제들에게 작은동생이라고 말한 후에 갑자기 소자라고 말한다. 여기서
소자라고 말했지만, 아들이라는 의미다. 처음에는 율법의 아들이었지만,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 은혜의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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