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44장 1-13절

 

베냐민의 푸대에서 나온 잔은 무엇인가

 

(창세기 44 1-13)요셉이 그의 집 청지기에게 명하여 이르되 양식을 각자의 자루에 운반할 수 있을 만큼 채우고 각자의 돈을 그 자루에 넣고 ……… 그들이 옷을 찢고 각기 짐을 나귀에 싣고 성으로 돌아 가니라』

『요셉이 그의 집(바이트) 청지기에게 명하여 이르되 양식(오켈)을 각자(에노쉬)의 자루(암트하트)에 운반할 수 있을 만큼 채우고』바이트() 위 청지기는 문이다. 문은 양의 문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들어올릴 수 있을 만큼 아세르 양식을 준다. 분리할 수 있는 양식을 주는 것이다. 암트하트는 하나님의 보고다. 하나님의 보고에 오켈(보물)이 가득 들어있다는 것이다. 에노쉬들의 푸대에는 분리되는 생명의 양식이 가득채워져 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 안에 들어오는 자에게는 깨어지는 양식이 필요없다. 그냥 양식(보물)이다.

『각자의 돈을 그 자루에 넣고 또 내 잔 곧 은(케세프:율법)(가비야)을 그 청년의 자루 아귀에 넣고 그 양식 값 돈도 함께 넣으라 하매 그가 요셉의 명령대로 하고 아침이 밝을 때(보케르)에 사람들과 그들의 나귀들을 보내니라』각자의 돈은 율법을 의미한다. 요셉이 형제들에게 자루에 넣어준 돈이다. 그런데, 그것을 그대로 가지고 온 것이다. 자루 아귀는 자루의 처음 부분으로서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구약:율법)이다. 은잔은 율법에 의한 잔이다. 은잔은 깨어지는 양식의 말씀이다. 『그가』에서 히브리어 원에는 그가 아니라 그들()이다. 헴은 후의 복수형이다. 그들은 에노쉬들이다. 후와 하나가 되어야 할 사람들이다. 그들이 나귀와 함께 있는 것이다.

『그들이 성읍(이르)에서 나가(야차) 멀리 가기 전에 요셉이 청지기에게 이르되 일어나 그 사람들의 뒤를 따라 가서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어찌하여 선을 악으로 갚느냐』그들은 헴이고, 에노쉬들이다. 후와 하나가 될 자를 청지기로 하여금 뒤를 따라가게 했다. 추적하는 것은 진리의 말씀가운데, 있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말한다. 선을 악으로 갚는 것은『너희가 악한데, 어찌하여 선으로 마칠 수 가 있는가』라는 것이다. 갚는다 라는 말은 마치다, 완성하다라는 의미를 갖는다. 악을 선으로 화평하는 일이 어떻게 이루어 졌는가 라고 묻는 것이다.

『이것은 내 주인()이 가지고 마시며 늘 점치는(나하쉬) 데에 쓰는 것이 아니냐 너희가 이같이 하니 악하도다 하라』후는 하나님이시다. 잔을 마시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는 것이다. 나하쉬는 소리를 낸다는 의미를 갖는다. 나하쉬는 울타리 안에서 성령의 소리를 내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의 소리를 내는데, 성령의 소리를 내지않고 소리를 흉내내는 자들은 악한 것이다. 악하다라는 것은 하나님 없이 선을 이루었다고 하므로 마음이 편치않다는 것이다.

『청지기가 그들에게 따라 가서 그대로 말하니 그들이 그에게 대답하되 내 주여 어찌 이렇게 말씀하시나이까 당신의 종들이 이런 일은 결단코 아니하나이다』청지기가 그대로 말하는 것은 성령의 소리를 내라는 것이다. 그래서 청지기가 잔의 의미를 알려준다. 그런데 에노쉬들이 말하기를『주여 이 다바르를 다바르 합니까』라는 것이다. 도대체 이것이 문으로 나와서 문으로 들어가는 것입니까, 도무지 이해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말하기를 우리는 이 다바르를 만들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것을 만드는 것은 더럽게 하는 것(할릴라)이기 때문이다. 할릴라는 할랄에서 유래된 단어다. 할랄은 더럽게 하는 것을 시작하는 의미다.

『이런 일에서』, 이런(엘레)일은 다바르해서 다바르 하는 일이다. 에노쉬들이 자루에 양식을 채운 것과 카탄의 자루에 은잔을 숨한 것이 무엇인지 아느냐 라고 묻는 것이다. 다바르를 다바르 한다는 말 속에는 이 질문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에노쉬의 자루에는 양식만 넣었고, 베냐민의 자루에는 은잔이 들어있는데, 그것을 알려주는 것이다. 그것을 알려주기 위해서 청지기가 온 것이다. 악을 선으로 완성하는 것인데, 너희가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아는냐 라는 것이다. 우리는 다 죄인인데, 선으로 말미암아 완성되는 것이 무엇인지 아느냐 라는 것이다. 에노쉬는 그것을 모르는 것이다. 다바르를 다바르 하는 것을 모르는 것이다.

『우리 자루에 있던 돈(케세프)도 우리가 가나안 땅에서부터 당신에게로 가져왔거늘 우리가 어찌 당신의 주인의 집에서 은 금을 도둑질하리이까(가나브)』케세프는 요셉이 처음 넣어준 은이다. 그들은 돈을 다시 가져왔으므로 도둑질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요셉(하나님)이 그들(에노쉬:하나님을 떠난 자)들에게 말씀을 주었지만, 그것을 돌려주므로, 도둑질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님 입장에서는 도둑질을 당해야(침노를 당해야)하는데, 그들이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다. 가나브는 율법이 성전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요셉은 은을 주었지만, 그들은 은과 금이라고 말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변질시키는 것이다. 이스라엘이 율법을 장로들의 유전으로 변질시켜버린 것이다.

『당신의 종들 중 누구에게서 발견되든지 그는 죽을 것(무트)이요 우리는 내 주의 종들이 되리이다』요셉은 잔이 나온 사람은 내 종이라고 말하는데, 형제들은 발견되면 죽을 것이라고 말한다. 요셉의 종이 되는 것은 그리스도의 종이 되는 것이다. 은잔이 나온 자는 주의 종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형제들(에노쉬)들은 정 반대로 말한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베냐민)는 죽고, 자기들(그리스도 밖에 있는 자)은 산다는 것이다.

『그가 이르되 그러면 너희의 말(다바르)과 같이 하리라 그것이 누구에게서든지 발견되면 그는 내게 종(에베드)이 될 것이요 너희는 죄가 없으리라』후의 아세르와 함께 발견되면 종이 된다고 말한다. 죄가 없다는 말은 나(하나님)과 상관없는 자가 된다. 이스라엘은 스스로 의를 이룬다고 생각하므로 하나님과 상관없는 자들이 된 것이다.

『그들이 각각 급히 자루를 땅에 내려놓고 자루를 각기 푸니 그가 나이 많은 자(가돌)에게서부터 시작하여(할랄) 나이 적은 자(카탄)에게까지 조사하매(수탐) 그 잔(가비아) 베냐민의 자루에서 발견된지라』땅에 내려놓는 다는 것은 이쉬(그리스도)가 아직 땅에 있다는 것이다. 자루를 푸는 것은 각자(에노쉬)들이 푸는 것을 되어있지만, 이쉬가 푸는 것이다. 이쉬가 풀고 조사하는 것은 심판을 상징한다. 생명책에 기록된 대로 심판하시는 것이다.『조사하매』라는 것은 조사를 마친다(칼라)는 것이다. 은잔이 있는 자와 없는 자로 마친 것이다. 큰 자는 영적 이스라엘(먼저되는 자), 작은 자는 남은 자(나중 되는 자)를 의미한다. 가비아는 후(하나님)가 마시는 잔이다. 후가 마시는 잔은 피(포도주)의 잔을 마시는 것이다. 하나님이 스스로 십자가에서 죽는 것이다. 그래서 분리하는 것이다. 분리하는 소리를 듣는 자는 가비아를 마시는 것이다. 가비아를 마시는 자는 베냐민이다.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자만 잔을 마시는 것이다.

『그들이 옷을 찢고(시물라) 각기 짐을 나귀에 싣고』히브리 원어에는 에노쉬가 아니라 이쉬가 옷을 찢는다. 야곱도 요셉이 죽은 줄 알고 옷을 찢었다. 옷을 찢는 것은 그리스도의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들이 옷을 찢은 것이 아니라, 청지기(요셉)가 옷을 찢는 것이다. 그들이 옷을 찢는 것은 논리에도 맞지 않다. 들킨 자가 옷을 왜 찢는가? 청지기가 옷을 찢는 것이다. 베냐민이 가진 은잔을 너희들도 훔쳐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성으로 돌아 가니라』성에는 베냐민이 있다. 베냐민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인데, 그들과 함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야만 구원을 얻을 수 있음을 나타낸다.

Comments

Popular posts from this blog

창세기49장 13-24절

창세기 29장 1-10절

창세기48장 1-10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