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44장 25-34절

 

나의 흰 머리를 슬퍼하며 스올로 내려가게 하리라 하니

 

(창세기 44 25-34)그 후에 우리 아버지가 다시 가서 곡물을 조금 사오라 하시기로 우리가 이르되 우리가 내려갈 수 없나이다 우리 막내 아우가 함께 가면 내려가려니와 막내 아우가 우리와 함께 가지 아니하면 그 사람의 얼굴을 볼 수 없음이니이다 주의 종 우리 아버지가 우리에게 이르되 너희도 알거니와 내 아내가 내게 두 아들을 낳았으나 하나는 내게서 나갔으므로 내가 말하기를 틀림없이 찢겨 죽었다 하고 내가 지금까지 그를 보지 못하거늘 너희가 이 아이도 내게서 데려 가려하니 만일 재해가 그 몸에 미치면 나의 흰 머리를 슬퍼하며 스올로 내려가게 하리라 하니 아버지의 생명과 아이의 생명이 서로 하나로 묶여 있거늘 이제 내가 주의 종 우리 아버지에게 돌아갈 때에 아이가 우리와 함께 가지 아니하면 아버지가 아이의 없음을 보고 죽으리니 이같이 되면 종들이 주의 종 우리 아버지가 흰 머리로 슬퍼하며 스올로 내려가게 함이니이다 주의 종이 내 아버지에게 아이를 담보하기를 내가 이를 아버지께로 데리고 돌아오지 아니하면 영영히 아버지께 죄짐을 지리이다 하였사오니 이제 주의 종으로 그 아이를 대신하여 머물러 있어 내 주의 종이 되게 하시고 그 아이는 그의 형제들과 함께 올려 보내소서 그 아이가 나와 함께 가지 아니하면 내가 어찌 내 아버지에게로 올라갈 수 있으리이까 두렵건대 재해가 내 아버지에게 미침을 보리이다』

『그 후에 우리 아버지가 다시 가서 곡물을 조금(메아트) 사오라 하시기로』메아트는 소자를 의미하며, 메아트가 된 사람은 카탄이다. 메아트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카탄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를 의미한다.

『우리가 이르되 우리가 내려갈 수 없나이다 우리 막내 아우가 함께 가면 내려가려니와 막내 아우가 우리와 함께 가지 아니하면 그 사람의 얼굴을 볼 수 없음이니이다』막내아우는 베냐민을 의미한다. 베냐민과 함께 가지 않으면 그의 얼굴(판임)을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요셉(그리스도)이 카탄 형제(베냐민)를 볼 수 없기 때문에, 내려 갈 수 없다고 말한다.

『주의 종 우리 아버지가 우리에게 이르되』야곱이 아들들에게 설명하는 장면이다. 하나님이 하나님 나라를 떠나고자 하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다.『너희도 알거니와 내 아내가 내게 두 아들을 낳았으나 하나는 내게서 나갔으므로(야차) 내가 말하기를 틀림없이 찢겨 죽었다 하고 내가 지금까지 그를 보지 못하거늘』야곱이 라헬이 낳은 자식 둘에 대해서 말한다. 하나는 요셉이고, 나머지 하나는 베냐민이다. 야차는 하나님으로부터 나간 그리스도를 상징하며, 찢겨 죽었다는 말은 양의 죽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을 의미하며, 『찢겨』라는 말과 『죽었다』는 말은 죽음의 반복으로 큰 자를 위한 것과 작은 자를 위한 죽음을 의미한다. 베냐민은 세상에 던진 자들이지만,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자(네게드)를 의미한다.

『너희가 이 아이도 내게서 데려 가려하니 만일 재해가 그 몸에 미치면 나의 흰 머리를 슬퍼하며 스올로 내려가게 하리라 하니』재해가 그 몸에 미치는 것에 대해서, 원어에는 몸이 아니라 판임(얼굴:요셉)에 해를 끼치는 것으로 되어있다. 요셉과 관계없이 네게드에 해를 입으면 이라는 의미다. 네게드가 은혜를 받기 위해서 야곱이 스올에 내려가게 된다는 것이다. 마음이 그렇게 된다는 것이다. 요셉이 찟겨 죽었는데도 네게드들이 그의 얼굴을 보지도 못하면, 하나님이 네게드(구원받아야 할 자)를 위하여 스올(음부)로 내려가야 한다는 것이다.

『아버지의 생명과 아이의 생명이 서로 하나로 묶여 있거늘(사카르) 이제 내가 주의 종 우리 아버지에게 돌아갈 때에』돌아간다는 것은 하나님 아버지에게로 들어간다는 것이다. 사카르는 성경의 여러 군데 사용되었다. 창세기 30 42절에서『약한 양이면 그 가지를 두지 아니하니 그렇게 함으로 약한 것은 라반의 것이 되고 튼튼한 것은 야곱의 것이 된지라』튼튼한 것은 야곱에게 결탁되어 진(묶여 진) 것을 의미한다. 이외에도 유다와 다말 사이에서 베레스와 세라가 나왔는데, 세라가 나올 때 손에 홍색실이 묶여(사카르) 나왔다. 묶여 있다는 것은 결국 하나로 구원받는 것을 의미한다. 먼저되는 자와 나중되는 자, 첫사람 아담 안에서 온 자가 마지막 아담 안에서 가는 자가 되는 것이다.

『아이(나아르)가 우리와 함께(에트) 가지 아니하면 아버지가 아이의 없음을 보고 죽으리니』나아르는 베냐민이고, 네게드들인데, 아이 라고 표현되었다. 에트는 네피쉬와 네피쉬가 묶여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도 네피쉬는 아이의 의미를 갖는다. 아이와 아이가 묶여 있으므로 함께 가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나아르는 창세기 21 17절에서 등장하는 이스마엘, 창세기 22 17절에서 등장하는 이삭을 의미한다. 이삭과 이스마엘이 서로 묶여 있다는 것은 첫사람 아담과 마지막 아담은 서로 묶여 있는 의미를 갖는다. 야곱이 데리고 가는 자는 요셉에게 묶이는 것이다. 요셉(그리스도)에게 묶이는 자는 모두 베냐민(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이 되는 것이다.

요셉과 베냐민은 만나게 된다. 결국 그리스도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가 만난다. 야곱(하나님)이 그의 아들들을 데리고 애굽(세상)으로 내려가서 요셉에게 그들을 다 넘겨주는데, 베냐민을 데려가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같이 되면 종들이 주의 종 우리 아버지가 흰 머리로 슬퍼하며 스올로 내려가게 함이니이다』다시 베냐민이 아버지에게로 돌아가지 못하면 아버지가 스롤로 내려가는 일로 슬퍼하게 될 것이다. 유다가 변호의 말을 요셉에게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이 땅으로 와서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주의 종이 내 아버지에게 아이를 담보하기를 내가 이를 아버지께로 데리고 돌아오지 아니하면 영영히 아버지께 죄짐을 지리이다 하였사오니』영영히 라는 말은 모든 날이다. 유다는 아버지와 요셉에게 담보가 된다. 첫사람 아담에게도 마지막 아담에게도 그리스도로서 담보가 되는 것이다. 유다 계열을 통하여 그리스도가 세상에 들어오신다.

『이제 주의 종으로 그 아이를 대신하여 머물러 있어 내 주의 종이 되게 하시고 그 아이는 그의 형제들과 함께 올려 보내소서 그 아이가 나와 함께 가지 아니하면 내가 어찌 내 아버지에게로 올라갈 수 있으리이까 두렵건대 재해가 내 아버지에게 미침을 보리이다』유다는 세상에서 종이 된다. 즉 세상에서 십자가에서 죽는 그리스도인 것이다. 아이(베냐민)은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서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자들이다.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 하나님께로 돌아가지 않는다면, 하나님이 직접 음부로 가서 데리고 가야하는 일이 벌어질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베냐민)은 반드시 하나님께로 돌아가야만 하는 것이다. 이것의 담보가 유다(그리스도)이며, 유다는 요셉에게도 담보가 된다. 하나님을 떠나 이 세상에 온 자들이 이 글을 보고 깨달아라는 것이다. 유다는 하나님을 떠나 이 세상에 온 자를 다시 하나님 나라로 보내는 일에 관여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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