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46장 23-34절
죽음의 일격 후 네게드가 산 것을 본다
(창세기 46장 23-34절)『단의 아들 후심이요 납달리의 아들
곧 야스엘과 구니와 예셀과 실렘이라 이들은 라반이 그 딸 라헬에게 준 빌하가 야곱에게 낳은 자손이니 합이 칠명이라 야곱과 함께 애굽에 이른 자는
야곱의 자부 외에 육십 륙명이니 이는 다 야곱의 몸에서 나온 자며 애굽에서 요셉에게 낳은아들이 두명이니 야곱의 집사람으로 애굽에 이른자의 도합이
칠십명이었더라 야곱이 유다를 요셉에게 미리 보내어 자기를 고센으로 인도하게 하고 다 고센 땅에 이르니 요셉이 수레를 갖추고 고센으로 올라가서 아비
이스라엘을 맞으며 그에게 보이고 그 목을 어긋맞겨 안고 얼마 동안 울매 이스라엘이 요셉에게 이르되 네가 지금까지 살아있고 내가 네얼굴을 보았으니
지금 죽어도 가하도다 요셉이 그 형들과 아비의 권속에게 이르되 내가 올라가서 바로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가나안 땅에 있던 내 형들과 내 아비의 권속이
내게로 왔는데 그들은 목자라 목축으로 업을 삼으므로 그 양과 소와 모든 소유를 이끌고 왔나이다 하리니 바로가 당신들을 불러서 너희의 업이 무엇이냐
묻거든 당신들은 고하기를 주의 종들은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목축하는 자이온데 우리와 우리 선조가 다 그러하니이다 하소서 애굽 사람은 다 목축을
가증히 여기나니 당신들이 고센 땅에 거하게 되리이다』
『단의 아들 후심이요 납달리의 아들 곧 야스엘과 구니와 예셀과 실렘이라 이들은
라반이 그 딸 라헬에게 준 빌하가 야곱에게 낳은 자손이니 합이 칠명이라』단은 딘(심판)에서 유래된 단어다. 하나님의 공의로 심판을 받게 될 자라는 것이다. 후심은 후쉬(서루르는 자)라는
단어에서 유래된 것으로, 자기가 서둘러서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은 자가 된다. 납달리는 나프달리로 발음된다. 씨름하여(파달) 얻은 자라는 의미를 갖는다.
라헬이 야곱에게 빌하를 주고, 야곱으로부터 납달리가 나왔는데, 라헬이 언니와 씨름하여 이겼다 라고 생각했다.
야스엘은 야흐세엘로 발음된다. 하나님이 나누다라는 의미를 갖는다. 구니는 가난(울타리 안에 보호된)으로부터 유래되었다. 궁창 아래 물과 위의 물 사이, 즉 세상에서 자기의 일을 하는 자라는
것이다. 예셀은 예세르(야차르 :형태)로 발음되며, 야차르는
흙으로 만든 형태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세상에 대하여 흙으로 있는 자. 실렘은 보상이라는 의미다, 보상은 살람(회복시키다)에서 유래되었다. 회복시켜서
보상해주는 것이다. 하나님이 둘째사망에서 본래대로 반환해주는 것이다.
『빌하가 야곱에게 낳은 자손이니 합이
칠명이라』칠명이라는 말은 아세르(안식)의 자손들이다. 울타리 안에 있는데, 샤마임 안에 있는 것이다. 즉 영적 이스라엘과 이스마엘과 같이 그들도 먼저된 자와 나중된 자로 구원을 얻게 되는 것이다.
『야곱과 함께 애굽에 이른 자는 야곱의
자부 외에 육십 육명이니』육십육은 성경과 같다. 성경 육십육권을 열심히 읽어서 땅의 일만 찾아내면 666이 되는 것이다. 666은 땅의 일을 의미한다. 하늘의 것이 더해지면 칠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율법을
가지고 이 땅에 나왔는데, 율법 속에서 생명나무를 발견한 것이다.
『이는 다 야곱의 몸에서 나온 자며
애굽에서 요셉에게 낳은 아들이 두명이니 야곱의 집사람으로 애굽에 이른자의 도합이 칠십명이었더라』
두 아들은 두 네퓌시(영)이라는 것이다. 네사마(호흡)를 불어넣은 것은 영이 들어간 것이다. 두 그룹의 영들이다. 하나는 므낫세, 하나는 에브라임이다. 칠십이라는 말은 야곱이 데리고 온 숫자가 칠십
명이라는 의미도 있지만, 이들은 애굽으로 왔다가 다시 가나안으로 돌아가는 자 즉 하나님 나라로 돌아가는
자가 된다. 야곱(그리스도의 상징)의 후손으로 말미암아 이 땅에 온 모든 자들이 구원을 얻을 수 있게 된다는 말이다. 구원을 어떻게 얻는가에 대해서는 먼저된 자, 나중된 자, 남은 자가 되는 것이다.
『야곱이 유다를 요셉에게 미리 보내어
자기를 고센으로 인도하게 하고 다 고센 땅에 이르니』야곱이 유다를 요셉에게 보냈다는 번역은 잘못된 번역이다. 유대는
담보로 묶여 있으며, 유다는 요셉과 함께 있는데, 요셉이
유다를 그들(네게드)에게 보내는 것이다. 그래서 유다가 그들을 고센땅으로 인도(던지다)하는 것이다. 히브리어 원어는『가르키다 던진다』 라는 의미를 갖는다.
고센 땅은 미쯔라임에 있다. 고센 땅에 하나님의 백성들이 들어간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출애굽 당시 열가지 재앙을 내렸는데, 고센 땅은 해를 입지 않았다. 『그 날에 내가 내 백성의
거하는 고센 땅을 구별하여 그곳에는 파리 떼가 없게 하리니 이로 말미암아 나는 세상 중의 여호와인 줄을 네가 알게 될 것이라』(출8:22)『이스라엘 자손의 거한
고센 땅에는 우박이 없었더라』(출9:26) 고센 땅에는 유월절 어린양의
피가 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린양의 피로 말미암아 죽음의 사자로부터 벗어났다. 즉 영적으로 고센 땅은 그리스도가 있는 땅,『그리스도 안』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고센은 기멜(낙타)에서 유래되고, 기멜은
삼을 의미하며, 아버지와 성령 안에서 하나가 되는 것이다. 낙타는
율법을 상징하는데,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 안에서 하나되는 생명나무가 있는 것이다. 생명나무가 있는 율법으로 성령으로 그것을 이루겠다고 하는 자들이 있는 곳을 의미한다. 이 고센은 장차 율법에 의해서 가나안 땅에서 도피성으로 나타난다.『너희가
레위인에게 줄 성읍은 살인자로 피케 할 도피성으로 여섯 성읍이요 그 외에 사십 이 성읍이라.』(민35:6) 재판관이 도피성으로 도망간 자를 재판하는데, 도피성으로부터 나오지 않으면 죽임을 당하지 않는다. 고센 땅은 하나님이
바로(사탄)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것이다. 영적으로 하나님이 사탄에게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주도록 명령하신 것과 같은 것이다.
『요셉이 수레를 갖추고 고센으로 올라가서
아비 이스라엘을 맞으며 그에게 보이고 그 목을 어긋맞겨 안고 얼마 동안 울매』수레를 갖추고 라고 번역되어 있지만,
『요셉이 병거에 묶여(아사르) 고센으로 올라가서』라는
것이다. 아사르는 포로다. 요셉이 율법에 매여있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죽기 전에는 율법 아래 묶여 있는 것이다. 올라간다는
것은 율법의 가장 위로 올라간다는 것이다. 요셉이 병거를 타고 밝히 드러나서 고센 땅으로 가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율법 위에서 죽임을 당하고 그가 밝히 드러나서 하나님 나라로 돌아가신 것이다. 요셉이 고센 땅으로 가서 아버지 야곱을 만난 것이다.
『그 목을 어긋맞겨 안고』히브리어
원어에는『목에 떨어져서(나팔)』라고 되어 있다. 목에는 율법이 있다. 나팔은 하나님 나라로부터 세상으로 떨어진 것을
의미한다. 그리스도가 육신을 입고 세상에 오는 것을 의미한다.『얼마
동안 울매』울고 또 울었다. 두번 울었다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장차 세상에 와서, 십자가에서 죽을 것과 저들을 구원할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스라엘(야곱)이 요셉에게 이르되 네가 지금까지 살아있고 내가 네 얼굴을 보았으니
지금 죽어도 가하도다』 이스라엘의 모든 후손들이 이 말을 해야 한다는 의미다. 죽음은 요셉의 형들이
요셉을 팔고 그가 죽은 것처럼 염소의 피를 뭍혀서 야곱에게 보여준 사건의 죽음이다. 야곱은 지금 죽어도
가하도다 라고 번역되었으나, 그 죽음의 일격(무트 파암)을 보니 라고 번역되어야 한다. 요셉은 그 일로 인해서 애굽 땅에
팔려갔다. 즉 아버지를 떠난 것이 영적으로는 죽은 것이다. 야곱이
그 죽음의 일격을 보니 네게드들이 사는 것을 보는 것이다. 요셉이 죽었다가 산 것이 장차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이 생명을 얻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요셉이 그 형들과 아비의 권속에게
이르되 내가 올라가서 바로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가나안 땅에 있던 내 형들과 내 아비의 권속이 내게로 왔는데 그들은 목자라 목축으로 업을 삼으므로
그 양과 소와 모든 소유를 이끌고 왔나이다 하리니』바로는 율법의 머리다. 요셉이 율법의 모든 것에 올라가서
선포하겠다는 것이다. 아세르의 아버지의 집과 형제들이 가나안 땅에서 애굽 땅에 온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왜 이 땅에 오게 된 것인가를 설명하는 것이다.
『그들은 목자라 목축(미크네)으로 업을 삼으므로』미크네는 말씀으로 가축을 먹이는 것이다.『모든 소유(아세르)를
이끌고 왔다(하야)』라는 말은 하늘로부터 이 땅에 온 것을
나타나게 하는 것이다. 소와 양은 되새김하는 가축이며, 목자는
그 소와 양을 먹이는 자다. 요셉이 이 말을 바로(율법)에게 설명하는 것이다. 율법 속에는 꼴을 먹여서 하나님이 받으실만한
소와 양을 드리는 것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을 율법에게 선포하는 것이다. 그래서 율법 속에는 이 말의 의미가 들어있는 것이다. 율법을 지키는
자들은 이 말의 의미를 깨달아야만 한다.
『바로가 당신들을 불러서 너희의 업이
무엇이냐 묻거든』율법이 “말씀을 먹어서 만드는 것이 무엇인가” 라고 묻는 것이다. 『당신들은 고하기를 주의 종들은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목축하는 자이온데』우리는 말씀으로 가축을 먹여서 하나님께
드리는 자들이다 라고 말하라는 의미다.
『우리와 우리 선조가 다 그러하니이다
하소서 애굽 사람은 다 목축을 가증히(토예바) 여기나니 당신들이
고센 땅에 거하게 되리이다』하나님 나라를 떠나
세상에 와서 사백세겔을 내고 안식을 이루어 성전이 되는 자를 의미한다. 이스라엘에게는 너무 좋은 일이지만, 애굽에게는 토예바라는 것이다. 토예바는 우상을 섬기는 일을 의미한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가증히 여기는 것이다. 세상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를 미워하는(토예바) 것이다.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 기의 것을 사랑할 터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세상에서 나의 택함을 입은 자인 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요란복음15: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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