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48장 10-22절
그 아우가 그보다 큰 자가 되고 그 자손이 여러 민족을 이루리라
(창세기48장 10-22절) 이스라엘의 눈이 나이로
인하여 어두워서 보지 못하더라 요셉이 두 아들을 이끌어 아비 앞으로 나아가니 이스라엘이 그들에게 입 맞추고 그들을 안고 요셉에게 이르되 내가 네
얼굴을 보리라고는 뜻하지 못하였더니 하나님이 내게 네 소생까지 보이셨도다. ……………이스라엘이 요셉에게 또 이르되 나는 죽으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사 너희를 인도하여 너희 조상의 땅으로 돌아가게 하시려니와 내가 네게 네형제보다 일부분을 더주었나니 이는 내가 내칼과
활로 아모리 족속의 손에서 빼앗은 것이니라
『이스라엘의 눈이 나이로 인하여 어두워서 보지 못하더라 요셉이 두 아들을 이끌어 아비 앞으로 나아가니 이스라엘이 그들에게 입 맞추고
그들을 안고 요셉에게 이르되 내가 네 얼굴을 보리라고는 뜻하지 못하였더니 하나님이 내게 네 소생(씨)까지 보이셨도다.』얼굴의 면전에는 네게드(다른 한편)가 있다. 아담으로
하와가 분리될 때, 돕는 베필이라고 했다. 돕는 베필이 분리된
다른 한편이다. 여기서 얼굴을 본다는 면전은 요셉을 말한다. 그런데, 야곱이 면전을 보게 될 것이라고 생각(기도)하지 않았지만, 하나님이 그의 씨를 보게 해주었다는 것이다. 기도는 하나님이 해주신다. 물론 인간들의 기도도 있지만, 대부분 자기를 위한 기도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이루는
기도는 오직 하나님이 스스로 하시는 것이다. 로마서 8장 27절에서『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 하심이니라』
『요셉이 아비 무릎 사이에서 두 아들을 물리고 땅(에레츠)에 엎드려(베레크) 절하고
우수로는 에브라임을 이스라엘의 좌수를 향하게 하고 좌수로는 므낫세를 이스라엘의 우수를 향하게 하고 이끌어 그에게 가까이 나아가매』 베레크는 바라크(축복을 받다)에서 유래된 단어다. 절하고는
경배하다라는 의미다. 즉 코로 경배하는 것이다. 코는 호흡(영)과 관계된다. 요셉이
영으로 야곱에게 경배를 했다는 것이다. 즉 육체로 보여진 하나님께 경배한 것이다.
『이스라엘이 우수를 펴서 차자 에브라임의 머리에 얹고 좌수를 펴서(샤칼) 므낫세의 머리에 얹으니 므낫세는 장자라도 팔을 어긋맞겨 얹었더라.』야곱이
므낫세를 오른손으로 머리에 얹으면, 요셉이 보기에는 왼쪽으로 보인다.
율법에는 장자가 복을 받는다. 그래서 요셉은 므낫세를 야곱의 우편에 두고, 에브라임를 좌편에 두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큰 자가 작은 자를 섬기리라
라고 말을 했다. 요셉은 사람들의 생각을 보여준다. 야곱은
사람들의 생각에 나도 아는데, 이를 거절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것이다. 땅의 장자는 첫사람 아담이고, 하늘의 장자는 마지막 아담,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들어오는 자가 복을 받는
것이다. 에서가 육의 눈으로 볼 때 장자였지만, 영의 눈으로는
야곱이 장자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하늘의 축복을 받는다. 요셉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예수님은 인간의 육과 하늘의 신성이 결합된 분이다. 육은 세상의 사람들을 의미하며, 요셉이 행동한 바가 바로 예수님의
육, 즉 세상의 사람들의 생각을 대변하는 것이다.
샤칼이라는 단어는 지혜로운, 신중한 이라는 의미다.『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 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창3:6)』지혜롭게 라는 말이 샤칼이다. 사람이 보기에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러운 것은 자기의 의를 드러내는 것이다. 샤칼
므낫세는 율법 안에서 자기의 의를 나타내려는 자인 것이다.
『그가 요셉을 위하여 축복하여 가로되 내 조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의 섬기던 하나님, 나의
남으로부터 지금까지 나를 기르신 하나님』 야곱이 하나님에 대해서 설명하는 것이다. 먼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라고
했다. 아브라함의 면전에서 함께 걸으신 육신으로 오신 하나님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이삭의 섬기던 하나님에서 우리말 번역에는 없지만, 히브리어 원어에는
날(욤)의 이것 저것이라고 번역되는 말이 포함되어 있다. 욤의 이것 저것은 밤과 낮이다. 욤의 이것 저것이 계속되는 한, 양을 먹이시는 이삭의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아브라함과 이삭의 하나님을
함께 보면, 데리고 오는 하나님과 데리고 가시는 하나님이라는 의미가 된다.
『나를 모든 환난에서 건지신 사자(말라크)께서
이 아이에게 복을 주시오며 이들로 내 이름과 내 조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의 이름으로 칭하게 하시오며 이들로 세상에서 번식되게 하시기를 원하나이다.』말라크는 하나님이 보내신 메신저다. 모든 환난에서 구속하는(가알) 사자라는 것이다. 모든
밤과 낮에 악에서 구속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 사자는 이삭의 하나님,
즉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장차 사람들에게 보내질 것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사자가 야곱을 건지셨다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적 이스라엘을 구속하는 것이다. 육적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법(율법)을
지키는 자(히브리인)이고,
강을 건너 땅에 온 자들이다. 그러나 영적 이스라엘은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자들이다.
『요셉이 그 아비가 우수를 에브라임의 머리에 얹은 것을 보고 기뻐 아니하여 아비의 손을 들어 에브라임의 머리에서 므낫세의 머리로
옮기고자 하여 그 아비에게 이르되 아버지여 그리 마옵소서 이는 장자니 우수를 그 머리에 얹으소서』요셉은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야곱이 에브라임을 축복한 것을 보고 슬퍼했다. 율법 속에서 육의
눈으로 바라볼 때는 그렇다. 예수님도 육신을 가졌으므로 마귀의 시험을 받으신 것처럼, 세상의 육을 가진 자는 이렇게 반응한다. 요셉이 야곱에게 에브라임의
머리 위에 오른 손을 앉지 말아달라는 말을 하는 것이다. 요셉이 이렇게 말하는 것은 율법을 가진 자의
모습을 나타내는 것이다.
『아비가 허락지 아니하여 가로되 나도 안다 내 아들아 나도 안다 그도 한 족속이 되며 그도 크게 되려니와 그 아우가 그보다 큰 자가
되고 그 자손이 여러 민족을 이루리라 하고』 하나님은 모든 사람의 소리를 듣고 있다. 에브라임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그는 후의 백성이 되고 하야할 것을 말한다. 에브라임은
하나님 나라로 돌아갈 것이라는 의미다. 므낫세도 후의 백성(가돌)으로 크게 성장할 것을 안다는 것이다. 므낫세는 남은 자를 상징한다.
『그 날에 그들에게 축복하여 가로되 이스라엘 족속이 너로 축복하기를 하나님이 너로 에브라임 같고 므낫세 같게 하시리라 하리라 하여
에브라임을 므낫세보다 앞세웠더라』후의 날에 하나님이 그들을 축복하고 축복했다 라고 반복하고 있다. 에브라임을
므낫세 보다 앞세웠다고 하는데, 원본에는 에브라임의 면전에 므낫세를 세웠다 라고 되어있다. 에브라임과 므낫세가 네게드한 상태다. 영적인 것과 육적인 것이 나뉘어지고, 빛과 어둠이 나누어지듯이 그런 상태가 된 것이다. 『그 자손들은
하윌라에서부터 앗수르로 통하는 애굽 앞 술까지 이르러 그 모든 형제의 맞은편에 거하 였더라』(창25:18) 맞은 편이 면전이다. 면전에 있다는 말은 분리되었지만, 하나가 되어야 함을 말해준다.
『이스라엘이 요셉에게 또 이르되 나는 죽으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사 너희를 인도하여 너희 조상의 땅으로 돌아가게 하시려니와』
이스라엘이 죽으나 라고 번역되었지만, 원본은『죽어서 하야하고, 하야
한다』는 것이다. 세상에 와서 다시 돌아간다는 의미다. 하야는
향수하였다 라는 의미다. 향수는 보이지 않는 세계로부터 보이는 세계로 잠시 왔다가 다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조상의 땅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땅을 의미한다.『내가
너와 네 후손에게 너의 우거하는 이 땅 곧 가나안 일경으로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고 나 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창17:8) 가나안은 하나님 나라를 상징한다. 하나님이 그의 영적 백성을 영원한 하나님 나라로 돌아가게 만든다.
『내가 네게 네 형제보다 일부분을 더 주었나니(에하드)
이는 내가 내칼과 활로 아모리 족속의 손에서 빼앗은 것이니라』어깨 위에 하나를 얹어 주었다고 되어 있다. 얹어준 것이 아모리 사람에게 뺏은 칼과 활이라는 것이다. 야곱이
칼과 활로 아모리 사람의 것을 빼앗은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야곱이 이 칼과 활을 요셉의 어께
위에 올려주었다는 것이다. 활은 율법이고, 칼은 성령의 검(그리스도)을 의미한다. 율법
속에 그리스도가 숨겨져 있다. 에하드는 통일시키다 라는 의미다. 즉
율법 속에서 그리스도를 만나 하나님과 하나가 되어(에하드)야
함을 말해준다.
아모리 사람은 가나안의 여섯 족속 중의 하나다.『네 자손은 사대만에 이 땅으로 돌아 오리니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관영치 아니함이니라 하시더니』(창15:16). 아모리는 아마르에서 유래된 단어다. 아마르는
하나님이 땅에 대해서 지켜라 라고 말씀하신 모든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말씀(율법)을 지키고 행하는 자들이 바로 아모리 사람들이다. 아모리 사람의 칼과 활을 취하여 요셉의 어깨에 올려준 것은, 그들이
율법을 지키려고 하지만, 그것이 불가능함을 깨닫고 요셉(그리스도)를 통하여 그것을 이루려고 하는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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